[연합이매진] 정선 곤드레나물밥

입력 2017-11-13 08:01
[연합이매진] 정선 곤드레나물밥

별미로 사랑받는 청정 산나물의 토착전통음식

(정선=연합뉴스) 임형두 기자 = 심산유곡의 강원도 정선 땅. 20세기 후반까지만 해도 산간 고랭지가 대부분인 이곳에서는 쌀밥 먹기가 쉽지 않았다. 대신 산언덕에서 각종 산나물이 풍부하게 자라 가난한 화전민들에게 귀한 구황식물이 돼줬다. 그 대표적 주역이 바로 곤드레. 오늘날에는 별미의 건강식품으로 각광받고 있다. 전통의 곤드레나물밥에 이어 곤드레비빔밥도 최근 새롭게 탄생해 식객의 입맛을 다시게 한다.

정선읍내에 있는 정선아리랑시장. 50여 년 역사의 전통 오일장인 이곳에는 토착 음식인 곤드레나물밥을 파는 식당들이 즐비하다. 시장 골목을 걷노라니 식당 간판 하나가 유달리 눈에 들어왔다. 이름하여 '곤드레만드레'. 특이하다 싶어 식당 주인에게 내력을 물었더니 "그냥 지었어요. 기억하기 쉽고 재미있으라고요"라며 웃음 지었다. 식당 입구에 내걸린 글귀는 '풍경에 취하고 아리랑 가락에 취하고 곤드레만드레 인심에 취하다'. 이 고장의 멋과 맛, 흥을 재치있게 함축한다 싶다.







◇ 별미의 건강식으로 탈바꿈한 구황식물



산 넘어 산이다. 그야말로 첩첩산중! 도로가 뻥뻥 뚫린 현대여서 그나마 쉽게 접근할 수 있지 몇십 년 전만 해도 좀처럼 다가가기 힘든 산간벽지였다. 백두대간의 한가운데에 있는 정선 땅. 표고 700m 이상이 전체 군 면적의 60%가 넘는 전형적 산악 지형으로 평야를 찾기란 도무지 어렵다. 1천m 이상의 고지가 100개가 넘는다니 예부터 인근의 영월, 평창과 더불어 산다삼읍(山多三邑)으로 불린 게 당연했겠다 싶다.

전체 농경지 가운데 밭이 차지하는 비중이 90% 이상. 농토를 얻지 못한 사람들은 산으로 산으로 밀려 올라가야 했다. 그리고 산중에서 풀과 나무를 불살라 그 자리에 밭을 일구는 화전민이 됐다. '평생 먹어야 쌀 두세 말을 못 먹고 죽는다'고 할 만큼 이들에게 쌀은 귀하디귀했다. 쌀밥은 명절 때나 출산일, 제삿날에나 겨우 맛볼 수 있었다.

산간지역 주민들에게 주식은 감자, 옥수수, 메밀이었다. 곤드레를 비롯해 딱주기(딱쮜기), 취나물, 고사리, 더덕 같은 산나물은 강과 개천에서 잡은 물고기와 함께 요긴한 부식이 돼줬다. 그중 대표음식이 바로 곤드레나물밥. 산언덕 곳곳에 자생하는 곤드레는 화전민들을 먹여 살려준 구황식물이었으나 시대 흐름 속에 어느덧 영양과 식감이 그만인 기호음식의 주재료로 다시 탄생했다.

"한치 뒷산에 곤드레 딱주기/ 임의 맛만 같다면/ 올같은 산에도 봄 살아나지/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날 넘겨주소"

곤드레나물은 정선아리랑의 가사에도 나올 만큼 친숙한 음식 재료다. 산속을 헤매다 눈에 번쩍 띄게 피어난 곤드레와 딱주기가 반갑건만 기다리는 임을 만난 것만은 못하다는 안타까움을 빗댄 것이다. 배고픔을 해결하는 데는 산촌에 풍부하게 자생하는 곤드레만한 식재료도 드물었다.

'곤드레만드레'의 의미는 사전상으로 술이나 잠에 몹시 취해 정신이 흐릿하고 몸을 잘 가누지 못하는 상태다. 일부에서는 가녀린 곤드레나물의 줄기가 바람에 살랑살랑 흔들거리면 흡사 그 모습이 취해 몸을 가누지 못하고 휘청거리는 것과 같다 해서 생긴 말이라고 본다. '곤드레'에 '만드레'를 붙여 어감의 묘미를 한껏 살렸다는 얘기다.



◇ 봄철 채취 산나물로 즐기는 사계절 음식

곤드레밥을 살피기에 앞서 곤드레의 정체부터 알아보자. 고려엉겅퀴라고도 하는 곤드레는 엉거시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이다. 원줄기는 높이가 1~2m 정도로 자라는데 4월과 5월에 채취한다. 나물취와 모양이 비슷하지만 잎이 둥그스레하고 표면에 윤기가 나는 점이 다르다.

곤드레는 잎이 가늘고 길며 그 끝이 뾰족한 바소꼴로 가장자리에 가시가 돋아 있어 날로 먹을 수는 없다. 따라서 억센 잎과 줄기를 데쳐 말린 뒤 묵나물로 만들어두었다가 먹는 게 일반적이다. 보통의 산나물은 많이 먹을 경우 몸이 붓고 누렇게 들뜨기 쉬우나 곤드레는 식감이 부드러운 데다 아무리 먹어도 탈이 나지 않아 산모들이 미역국 대신 섭취하곤 했다.

이 곤드레로 만드는 곤드레나물밥. 식이섬유와 비타민, 칼슘, 단백질이 풍부하고 성인병 예방 효과까지 큰 것으로 알려지면서 곤드레밥의 관심과 인기는 그만큼 높아지고 있다.

곤드레나물밥의 재료는 쌀과 곤드레, 들기름, 소금 등으로 비교적 단순한 편이다. 묵나물 상태의 곤드레를 삶은 뒤 먹기 좋게 썰고 들기름과 소금을 넣어 무친다. 그리고 불린 쌀이 놓인 솥단지에 물과 함께 넣고 고슬고슬하게 밥을 짓는다. 센불, 중불, 약불을 차례로 가하면 맛과 향이 뛰어나고 식감도 그만인 곤드레밥이 완성된다.

곤드레밥은 냉동된 재료를 쓰느냐, 아니면 건조된 재료를 쓰느냐에 따라 색깔이 달리 나온다. 봄철에 채취한 나물을 깨끗이 씻은 뒤 삶아서 냉동한 뒤 밥을 지으면 초록색이 그대로 살아 있다. 그러나 건조한 다음에 밥을 지으면 검푸른색 상태로 남는다. 식당에서는 대개 건조된 곤드레 재료를 사용하나 식감은 냉동된 것과 별 차이가 없다고 한다. 밥을 지을 때 표고버섯을 썰어 넣으면 영양은 물론 맛이 훨씬 좋아진단다.

다된 밥은 그릇에 담은 뒤 양념장이나 고추장, 된장찌개 등을 버무려 기호에 맞게 비벼 먹는다. 나물밥과 함께 상에 오르는 반찬은 무채김치, 물김치, 콩나물, 고추장, 간장, 꼴뚜기젓갈이다. 여기에 배추된장국을 곁들이면 담백하면서도 구수한 맛을 즐길 수 있다. 취향에 따라 간장양념과 자박장양념을 넣어 먹어도 좋다. 곤드레밥은 한 그릇에 6천~7천원으로 값이 저렴한 편이다.

정선읍의 대표적 곤드레나물밥 전문식당 중 하나인 싸리골의 최정자(62) 대표는 "25년 동안 곤드레밥을 지어오면서 담백·깔끔한 맛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면서 "은근한 나물향이 일품인 곤드레밥은 요리사의 정성 어린 솜씨도 솜씨지만 양념과 반찬을 적절히 활용해서 먹는 손님의 취향도 맛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라고 말했다.

속초에서 왔다는 손님 권정란(49) 씨는 "곤드레밥도 본고장에서 먹어야 제맛이 나는 것 같다"며 "음식의 맛과 향이 좋아 이번에도 어머님, 남편과 함께 정선을 찾았다"고 만족감을 표시했다. 서울에서 남편과 같이 온 이미현(52) 씨도 "곤드레밥이 풍무한 섬유질과 비타민 등으로 건강에 좋다는 사실은 익히 알고 왔는데 정선에서 먹으니 그 맛이 더욱 살아나는 것 같다"고 만족스러워했다.



◇ 새롭게 탄생한 곤드레비빔밥

곤드레밥은 파생음식을 낳으며 나날이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그 대표적 음식이 곤드레비빔밥. 정선군은 2018평창동계올림픽을 앞두고 정선의 대표요리 10선을 개발해 최근 발표했다. 여기에는 곤드레비빔밥이 곤드레 버섯불고기와 함께 포함돼 눈길을 끌었다.

곤드레비빔밥이 등장한 이벤트 중 하나가 지난 9월 30일 정선읍 아라리공원에서 열린 '2018 컵비빔밥 나눔행사'.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을 앞두고 2018인분의 곤드레비빔밥을 지어 군민 등 축제 참가자들과 함께 나눴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전정환 정선군수는 "비빔밥은 어울림을 상징하는 음식"이라면서 "우리 고장의 대표 나물인 곤드레를 식재료로 비빔밥을 새롭게 탄생시켜 모두가 함께 손잡고 어울리는 평창동계올림픽이 되기를 기원한다"고 말했다.

곤드레비빔밥은 잡곡밥과 곤드레나물, 숙주, 느타리버섯, 고사리, 애호박, 들기름을 재료로 한다. 곤드레를 들기름에 볶고 갓 지은 밥에 갖가지 나물을 나란히 올려 간장양념장이나 약고추장을 넣어 비빔으로써 입맛을 최대한 살린다.

삶은 곤드레를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 들기름에 부드럽게 볶는 과정은 곤드레나물밥과 같다. 이어 채썰기한 애호박을 비롯해 고사리와 숙주, 느타리버섯 등의 재료를 그릇의 밥 위에 고루 돌려 담은 뒤 주인공격인 곤드레 나물을 한가운데에 얹고 들기름을 두른다.

곤드레비빔밥 개발에 앞장선 정선토속음식연구회 강경양 회장(곤드레 음식점 '팔도강산' 대표)은 "간장양념장이나 약고추장을 취향대로 선택해 넣어주면 좋다"면서 "그 위에 계란 후라이까지 올리면 맛은 물론 시각적으로도 금상첨화"라고 설명했다.

곤드레밥을 먹고 정선의 유명 관광지를 둘러보면 일거양득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다. 그중 하나가 화암약수, 용마소, 화암동굴 등이 포함된 화암면의 화암8경이다. 장엄한 기암절벽의 형상이 금강산을 닮았다는 소금강도 가볼 만하다. 여량면에서는 만추의 분위기 속에서 신선한 숲의 아름다움을 온몸으로 느끼는 정선레일바이크를 탈 수 있다. 남면의 민둥산에 오르면 억새의 장관을 감상할 수 있다. 바람도 쉬어간다는 정선읍의 아리힐스, 정선 최대의 종합리조트인 고한읍의 하이원리조트 또한 둘러볼 만하다.

※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17년 11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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