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과 부의 평준화 뒤에는 항상 폭력적인 재난이 있었다
신간 '불평등의 역사'
(서울=연합뉴스) 황희경 기자 = 최근 미국 연방준비제도 발표에 따르면 미국에서 최상위 1% 가구의 소득이 전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13년 20.3%에서 지난해에는 23.8%로 상승하며 30년만의 최고치를 기록했다. 반면 하위 90%의 소득 비중은 49.7%로 조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다.
소득 불평등의 심화는 세계적인 현상이다. 세계 인구 중 소득 하위 절반의 개인 순 자산만큼을 소유한 세계 최고 부자의 수가 2010년 388명이었던 데서 2014년에는 85명, 2015년에는 62명으로 줄어들었다는 조사결과도 있다.
불평등은 역사적인 현상이기도 하다. 그러나 항상 불평등이 계속 심화하는 쪽으로만 역사가 흘러온 것은 아니다. 불평등은 심화했다 감소했다를 반복해 왔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역사학자 발터 샤이델은 역사 속에서 불평등이 줄어들었던 시기에 주목한다. 그는 신간 '불평등의 역사'(에코리브르 펴냄)에서 불평등을 끌어내렸던 '평준화의 네 기사(騎士)'로 대중동원전쟁과 변혁적 혁명, 국가실패(체제 붕괴), 치명적 대유행병을 꼽는다.
일본은 전쟁이 제공한 평준화의 교과서적 사례로 제시된다. 일본에서는 1850년 문호 개방 이후 불평등이 계속했다. 1938년 상위 1%는 총 신고소득의 19.9%를 벌어들였다. 그러나 이 비율은 7년 안에 6.4%로 떨어졌다. 손실 절반 이상은 최상층 중에서도 가장 부유한 0.1%에서 일어났다.
저자는 1937년 중국 침공으로 시작된 총력전과 전후 군정 기간이 전례 없는 규모로 불평등을 압착하고 소득과 부의 원천과 분배를 완전히 재구성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총력전 결과 1945년 9월 기준 물적 자본의 4분의 1이 사라졌다. 임대료와 이자소득 등 자본이득은 전쟁 시기 거의 사라졌다. 국민 대부분이 소득 손실을 겪었지만, 상대적으로 부자들이 큰 손해를 봤다.
2차대전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거의 모든 나라 역시 상위계층의 소득 점유율이 줄곧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저자는 "다소 상황은 다를 수는 있어도 승전국이건 패전국이건 민주체제이건 독재정권이건 대규모 폭력을 위한 대중동원은 소득과 부의 분배에서 변화의 엔진"이라고 설명한다.
국가 간 충돌이 전쟁이라면 국가 내부적 충돌인 혁명 역시 또 하나의 평준화 요소였다.
책은 가장 유의미한 사례로 공산주의 혁명이 소득과 부의 극적인 분산을 가져왔던 20세기를 꼽는다. 1차대전 이후 가장 극적으로 불평등이 줄어든 곳은 러시아다. 혁명지도자들은 지주들의 토지 재산권을 보상 없이 철폐했고 은행 국유화, 개인의 은행 계좌 압수 등의 조처를 했다. 이는 지주계급 50만 명의 전멸로 이어지고 혁명 이전 시대 말기 심했던 불평등은 볼셰비키 득세 이후 20년간 극적으로 하락했다.
공산주의 통치하의 중국에서도 비슷한 일이 재연됐다. 다만, 평준화는 국가의 강압이 시장의 힘을 더는 억누르지 못한 동안에만 유지됐다. 러시아의 경우 소련 몰락 뒤 불평등이 폭증했다. 1980년대 소련 시절의 지니계수는 0.26∼0.27이었지만 2011년엔 0.51로 커졌다. 중국의 지니계수는 1984년 0.23에서 2014년 0.55가 됐다.
중국 당나라 왕조는 국가실패(체제 붕괴)가 어떻게 엘리트의 재산파괴로 이어지며 평준화를 가져오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당 말기 황실 지배계급에 부와 권력이 집중됐다. 그러나 황소의 난을 시작으로 혼란이 이어지며 부자들이 집중적으로 공격의 대상이 됐다. 결국, 당나라의 소멸과 함께 부자들 또한 괴멸됐다. 서로마제국의 붕괴에서도 비슷한 사례를 찾을 수 있다. 현대에서는 소말리아의 사례를 참고할 수 있다. 소말리아에서는 1991년 모하메드 시아드 바레 정권이 전복된 뒤 파벌싸움으로 영토가 분열되고 지배적인 정부 체제가 없는 상태가 오랜 기간 이어졌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대부분의 발전지표가 국가 붕괴 이후 향상하기 시작했다. 과거 큰 혜택을 얻던 파워엘리트는 국가 붕괴 이후 사라졌다. 저자는 소말리아의 사례에서 '걷잡을 수 없는 약탈국가가 무정부 상태보다 복지에 더 해악을 끼칠 수 있음'을 발견한다.
마지막 평준화의 기사는 대규모 전염병이다. 흑사병은 물리적 인프라는 파괴하지 않은 채 인구수만 극적으로 줄어들게 했다. 생산성 향상 때문에 생산량은 인구가 줄어든 것보다는 덜 하락했고 1인당 평균 생산력과 수입이 증가하는 원인이 됐다. 토지 역시 노동력보다 풍부해졌고 지대와 이자율은 떨어졌다. 인구 감소는 노동가치 상승으로 이어진다. 이는 부자보다 가난한 사람에게 유리하게 작용하면서 부와 소득불균형을 약화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평준화의 네 기사'가 시사하는 점은 역사적으로 자원 불평등이 줄어드는 데는 모두 폭력적인 재난이 있었고 평준화의 규모는 폭력의 규모에 따라 달라졌다는 것이다.
책은 불평등 해소를 위한 대안을 제시하는 데까지는 나아가지 않는다. 저자는 오히려 미래에 대규모 전쟁이나 급진적인 혁명, 국가실패, 전염병이 다시 돌아오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지만, 그 가능성이 작다는 관점에서 미래의 평준화 실현 가능성에 회의적이다. 구체적인 자료와 기록들로 주장을 입증하려는 노력이 돋보이는 책이다. 원제 'The Great Leveler'
다. 조미현 옮김. 768쪽. 4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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