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프부터 양고기까지…100여년만에 재현된 대한제국 정찬(종합)

입력 2017-10-11 11:48
수정 2017-10-11 13:43
수프부터 양고기까지…100여년만에 재현된 대한제국 정찬(종합)

조선호텔·문화재청·배화여대·문화유산국민신탁 협력사업



(서울=연합뉴스) 전준상 박상현 기자 = "송로버섯 구이와 굴·캐비아 등은 흔한 요리에 속하며, 프랑스 샴페인은 본고장의 유사한 행사에서보다 더 풍성하게 제공된다. 마치 유럽의 제후 궁정에 초대받은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이다."

독일 여성 에마 크뢰벨(1872∼1945)은 저서 '내가 어떻게 조선의 궁정에 들어가게 되었는가'에서 대한제국의 연회 음식이 훌륭한 서양음식에 견줄 만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1905년 여름부터 1년 동안 대한제국의 궁중의전 담당관 대리 역할을 했다.

크뢰벨이 호평했던 대한제국 황실의 서양식 정찬이 100여 년 만에 재현됐다. 문화재청과 신세계조선호텔, 배화여대, 문화유산국민신탁이 11일 개최한 '대한제국 황실 서양식 연회 음식 재현행사'에서 프랑스식 코스 요리가 공개됐다.





이번 행사는 네 기관이 지난 5월 덕수궁 석조전에서 체결한 '대한제국 음식문화 재현' 업무협약의 성과로 마련됐다. 문화재청의 총괄 아래 신세계조선호텔은 연구비 지원과 메뉴 재현을 맡았고, 배화여대는 음식문화 연구를 수행했다.

대한제국 황실이 만든 연회 음식에 관한 기록은 크뢰벨이 남긴 1905년 9월 19일 저녁 메뉴가 유일하다. 만찬 메뉴는 아스파라거스 수프, 구운 생선과 버섯 요리, 올리브 비둘기 요리 등으로 구성됐다.

연구 책임자인 손정우 배화여대 교수는 "황실에서 외국 공사를 접대한 연회에서는 19세기를 대표하는 서양음식이 나왔다"며 "수프를 시작으로 전식, 메인 요리, 채소, 디저트, 식후주까지 전형적인 프랑스 코스 요리가 제공됐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캐비아와 푸아그라, 송로버섯 등 고급 재료를 사용하고, 메뉴를 프랑스어로 기재한 점도 특징이었다"고 덧붙였다.



이날 재현된 음식은 크뢰벨의 기록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고기 단자를 넣은 맑은 수프인 '크넬 콩소메'를 시작으로 구운 생선과 버섯요리, 꿩 가슴살 포도 요리, 페이스트리 반죽으로 만든 파이 크러스트에 고기·생선·채소 등을 갈아 만든 소를 채운 후 오븐에 구운 요리인 푸아그라 파테, 안심 송로버섯 구이, 양고기 스테이크, 파인애플 아이스크림과 치즈 등 12개 요리가 테이블 위에 차려졌다.

손 교수는 "생선 요리는 당시 가장 많이 사용된 대구나 넙치를 제안한다"며 "비둘기 요리는 꿩으로 대체했고, 디저트는 국립고궁박물관에 남아 있는 제과 틀로 조리했다"고 말했다.

성영목 신세계조선호텔 대표이사는 "100년 호텔의 미식 노하우를 활용해 대한제국 황실 연회 음식 재현에 기여할 수 있게 돼 뜻깊다"며 "국내 현존하는 최고(最古) 호텔로서 전통문화유산 보전과 계승을 위한 활동들을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psh5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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