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남 암살' 피고들, 공판서 시신 北인도 쟁점화…이유는?
핵심증거 北에 인도된 상황서 증거불충분 주장 펼치려는 듯
(자카르타=연합뉴스) 황철환 특파원 = 김정남을 암살한 동남아 출신 여성들에 대한 재판에서 핵심 증거인 김정남의 시신과 소지품을 북한에 인도한 말레이시아 정부의 조처가 쟁점으로 떠오를 조짐을 보인다.
11일 선데일리 등 현지언론에 따르면 피고측 변호인들은 전날 말레이시아 샤알람 고등법원에서 진행된 5일차 공판에서 검찰이 확보한 증거물의 증거능력을 집중적으로 공격했다.
말레이시아 화학청 화학무기분석센터 라자 수브라마니암 소장에 대한 반대신문에서 변호인들은 김정남의 양복 상의의 행방을 물었다.
앞서 김정남의 상의 옷깃과 소매에서 화학무기인 VX 신경작용제가 검출됐다고 증언한 라자 소장은 "양복 상의는 신발과 청바지, 팔찌, 가방, 지갑, 열쇠고리, 시계 등 다른 소지품과 함께 북한으로 보내졌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아울러 김정남의 상의에서 채취된 샘플 역시 황 등에 노출해 분석하는 과정에서 모두 원형을 잃은 것으로 확인됐다.
라자 소장은 "샘플에서 추출된 물질은 여전히 남아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김정남 암살 혐의로 기소된 인도네시아인 시티 아이샤(25)의 변호를 맡은 구이 순 셍 변호사는 이것만으로는 증거능력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그는 올해 4월 시리아 내전에서 사용된 사린 가스의 경우 객관적인 분석을 위해 화학무기금지기구(OPCW)가 지정한 4개 실험실에 맡겨졌다면서 "이번 경우에는 단 한 곳에서만 분석이 이뤄졌고, 증거물도 모두 훼손됐다"고 말했다.
이런 주장은 말레이시아 정부가 지난 3월 말 김정남의 시신과 소지품을 북한에 인도해 추가적인 샘플을 확보할 길이 막혔다는 점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말레이시아가 북한의 '인질외교'에 굴복하는 바람에 '깃털'에 불과한 여성 피고들만 희생양이 됐다는 주장을 강화하기 위한 포석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북한은 김정남의 시신을 넘겨달라는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북한내 말레이시아인을 전원 억류해 인질로 삼았다.
말레이시아 정부는 결국 암살 한 달 반 만인 3월 30일 김정남의 시신을 북한에 인도했고, 치외법권인 주말레이시아 북한대사관에 숨어 있던 리지우(일명 제임스·30) 등 북한인 용의자들의 출국도 허용했다.
리지우는 올해 초 시티 아이샤를 쿠알라룸푸르 현지에서 영입해 백화점과 호텔, 공항 등지에서 낯선 이의 얼굴에 액체를 바르는 훈련을 시킨 인물이다.
다만, 재판부가 피고들의 주장을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범행 당시 입고 있었던 옷과 손톱 등에서 VX 신경작용제의 흔적이 검출되는 등 두 사람이 김정남을 살해했다는 직접적인 증거가 나온 것 역시 불리한 정황으로 꼽힌다.
말레이시아 샤알람 고등법원은 이달 2일 김정남 살해 혐의로 기소된 시티 아이샤와 베트남 국적자 도안 티 흐엉(29)에 대한 공판을 개시했다. 약 두 달여간 진행될 이번 재판에는 총 153명의 증인이 출석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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