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장으로도 번진 홍콩 독립 주장…중국 당국 '곤혹'
'국가 모독 처벌' 엄포에도 야유 터져 나오고 '홍콩 독립' 현수막까지
(홍콩=연합뉴스) 안승섭 특파원 = 중국의 국가인 '의용군행진곡'을 모독하면 처벌하겠다는 중국 정부의 엄포에도 홍콩 축구팬들이 야유를 보내고 '홍콩 독립'을 주장하는 현수막까지 내걸어 파문이 일고 있다.
11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전날 홍콩 경기장에서는 2019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예선전인 홍콩 대 말레이시아의 경기가 열렸다.
경기는 2대 1로 홍콩팀의 승리로 끝났지만, 정작 세간의 관심을 끈 것은 경기 시작 전 연주된 의용군행진곡에 대한 관중석의 반응이었다.
사실 홍콩 축구팬들은 2015년 6월 홍콩 대 부탄의 월드컵 예선 경기 때부터 '저항의 야유'를 계속하고 있는 상황이다.
당시 '우산 혁명'으로 불렸던 대규모 민주화 요구 시위가 실패로 끝난 지 6개월밖에 지나지 않은 때여서 반중 감정이 한창 고조됐었다. 이런 분위기에 경기 시작 전 중국 국가가 연주되자 팬들이 일제히 야유를 보낸 것이다.
홍콩에서 축구 경기가 열릴 때마다 이는 재연됐고, 의용군행진곡에 대한 팬들의 야유는 이후 13차례나 이어졌다.
아니나다를까 전날 경기에서도 중국 국가가 울려 퍼지자 양쪽 관중석을 가득 메운 축구팬들은 일제히 야유를 보냈다.
상당수 관중은 아예 뒤로 돌아서 '저항'의 뜻을 나타냈고, 관중석 한가운데에는 검은색 바탕에 흰색 글씨로 '홍콩 독립(香港 獨立)'이라고 쓴 현수막까지 내걸렸다.
홍콩축구협회는 곤혹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국제축구연맹(FIFA) 규정에 따르면 국가 연주는 강제 규정이 아니지만, 협회가 중국 정부의 눈치를 봐서인지 의용군행진곡 연주를 강행했다가 여지없이 축구팬들의 야유를 받은 것이다.
홍콩축구협회는 이러한 팬들의 행동을 저지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2015년에도 두 번이나 FIFA에 벌금을 내야 했다.
더구나 중국 정부는 이달부터 국가인 의용군행진곡을 모독하거나 상업적으로 사용하는 행위를 처벌할 수 있는 '국가법(國歌法)'을 시행하고 있다.
이에 따라 국가가 연주될 때 야유를 보내는 등 국가를 모독하는 행위를 할 경우 최고 15일의 구류에 처할 수 있다.
중국 당국은 국가법을 홍콩에도 적용하는 절차를 밟을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
중국의 국회 격인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는 이달 홍콩 입법회 의원들을 만나 국가법 조항을 홍콩 기본법에 삽입하는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그러나 홍콩 야당을 중심으로 국가법 적용이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에 위배된다는 반대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일국양제는 1997년 홍콩 주권 반환 후 50년간 중국이 외교와 국방에 대한 주권을 갖되, 홍콩에는 고도의 자치권을 부여하기로 한 것을 말한다.
홍콩 빈과일보는 "축구팬들의 야유는 중국 정부에 대한 홍콩인들의 불만을 드러낸 것"이라며 "야유 등을 엄벌하겠다는 홍콩축구협회의 사전 경고가 있었지만, 중국 국가에 대한 팬들의 야유를 막지는 못했다"고 전했다.
ssah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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