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인권조례 존폐 논란…"인권보호" vs "동성애 조장"
일부 개신교 단체, 조례 폐지 서명운동 이어 다음주 대규모 집회
종교계·시민단체, 동성애 조장 주장 비상식적·폐지 반대 한목소리
(홍성=연합뉴스) 한종구 기자 = 주민 인권의식 향상 등을 위해 충남도가 제정한 '도민 인권보호 및 증진에 관한 조례'(충남 인권조례)가 존폐 위기에 놓였다.
일부 개신교 단체가 '인권조례가 동성애를 조장할 우려가 있다'며 조례 폐지를 공식 청구한 뒤 대규모 서명운동을 전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최근까지 도민 10만여명으로부터 조례 폐지 서명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으며 오는 19일에는 충남도청 앞에서 대규모 집회도 열 방침이다.
반면 종교계와 시민단체는 "일부 개신교 단체가 비상식적인 주장을 하고 있다"며 인권조례 존치를 주장하고 있다.
◇ 일부 개신교 단체 "인권조례가 동성애 조장"
충남도가 인권조례를 제정한 것은 2012년 5월이다.
이어 2013년 서산을 시작으로 도내 15개 시·군도 모두 인권조례를 제정했다.
그러나 올해 초 갑자기 '인권조례 폐지'라는 암초를 만났다.
충남기독교총연합회와 충남성시화운동본부 등이 지난 2월 안희정 충남지사를 항의 방문해 '인권조례 폐지'를 요구했기 때문이다.
지난 4월에는 인권조례 폐지를 공식 청구했다.
이들이 인권조례 폐지를 요구하는 근거는 '성적지향, 성별 정체성, 전과 등 어떠한 이유로도 차별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고 명시한 도민 인권선언 제1조의 문구다.
이 문구에서 '성적지향' 등이 동성결혼 옹호 및 일부일처제 근간을 훼손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들은 충남지역 곳곳에 '동성애 옹호하는 충남 인권조례 폐지하라'는 현수막을 내거는 등 폐지운동과 함께 대대적인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시·군도 사정은 비슷하다.
아산·서산·당진·부여·공주·서천 등에서 인권조례를 둘러싸고 몸살을 앓고 있다.
특히 부여에서는 최근 인권조례 폐지 청구안이 군의회에 부의 돼 조만간 폐지 여부가 결정될 것으로 보여 관심이 쏠린다.
◇ 종교계·시민사회 "도민 인권보호 위해 필요"
지역 종교계와 시민사회단체는 인권조례가 동성애를 조장한다는 개신교 단체의 주장에 대해 '정당하지 않은 요구' 혹은 '비상식적인 주장'이라며 맞서고 있다.
충남지역 종교계 지도자들은 지난 8월 충남도청에서 안희정 지사를 만나 "인권조례를 통해 도내 사회적 약자의 인권보장과 증진에 더욱 힘써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인권조례에 대한 지역사회 종교인 의견서'를 전달했다.
이들은 의견서에서 "모든 인류의 화합과 공존공영을 염원하며 자비와 사랑의 실현을 추구해 온 우리는 충남지역에서 일어나는 인권조례 폐지운동에 대해 크나큰 우려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우주형 충남인권위원장도 지난 7월 도민인권지킴이단 워크숍에서 "인권조례가 폐지 청구 요건을 갖추더라도 실제로 폐지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며 "다른 시·도에 좋은 선례를 남기기 위해서도 연대하고 공론화해야 한다"고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앞서 충남참여자치지역운동연대와 충남청소년인권더하기 등 충남지역 시민사회단체는 '충남 인권조례 지키기 공동행동'을 구성했다.
이들은 "특정 종교단체는 사회적 소수자에 대해서도 상대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존재임을 인정해야 한다"며 "비이성적인 주장으로 인권조례를 호도해 폐지를 주장하는 시대착오적인 행위에 대해 210만 도민 앞에 사과하고 이를 즉각 중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 최종 결정 도의회 '몫'…정치적 희생양 가능성도
인권조례 폐지 여부에 대한 최종 결정은 도의회의 몫이 될 가능성이 커졌다.
지방자치법에 명시된 조례의 제정·개폐청구 제도에 따르면 먼저 조례 폐지를 청구한 뒤 6개월 이내(11월 9일)에 청구권자 주민 총수의 100분의 1인(1만7천32명)의 서명을 받아 충남도에 제출해야 한다.
조례안 폐지에 찬성하는 주민 명부가 제출되면 충남지사는 조례규칙 심의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수리 여부를 결정하다.
개신교 단체는 이미 도민 10만여명으로부터 조례 폐지 서명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명부가 제출되면 무리 없이 조례 폐지 청구안이 수리될 것으로 보인다.
조례 폐지 청구안이 수리되면 도의회에 부의 돼 심사를 받게 된다.
도의회의 판단에 따라 기각 또는 각하될 수 있다.
문제는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인권조례 존치 여부가 정치적인 판단에 따라 결정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개신교 단체의 조례 폐지 요구와 시민단체의 조례 존치 요구 사이에서 도의회가 개신교 단체의 표를 의식할 가능성이 작지 않다는 지적이다.
충남도 관계자는 "도민 인권조례는 인권이 존중되는 지역사회 실현에 이바지하기 위해 보호 및 증진에 관한 사항을 정한 것일 뿐 동성애와는 거리가 있다"며 "조례 폐지청구를 위한 청구인 명부가 접수되면 관련 절차에 따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jkh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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