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제국이 추진한 중립국 외교는 일제에 맞선 평화운동"
이태진 명예교수, 국립고궁박물관 학술심포지엄서 발표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대한제국이 열강의 희생물이 되지 않기 위해 추진했던 중립국 외교를 일제 침략주의에 대항한 평화운동의 시원으로 재평가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태진 서울대 명예교수는 12일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리는 대한제국 선포 120주년 기념 학술심포지엄에서 1900년을 전후해 대한제국이 펼친 외교 전략을 분석해 발표한다.
10일 공개된 발표문에 따르면 고종이 1897년 선포한 대한제국은 산업을 일으켜 국력을 신장하면서 국제사회로부터 영세 중립국으로 인정을 받아야 주권을 지킬 수 있다고 인식했다.
이러한 계획은 제국주의가 강화되는 흐름 속에서도 앤드루 카네기의 국제평화기금 쾌척, 노벨평화상 제정 등 국제사회 일부에서 벌어진 평화운동과 맞물려 마련됐다.
이 명예교수는 대한제국이 만국우편조약, 적십자조약 등에 가입하면서 국제사회에 존재를 알리고, 유럽의 중립국인 벨기에, 덴마크와 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한 것이 우연이 아니었음을 강조했다.
그는 "대한제국은 1902년 10월 각국의 특사를 초대해 고종의 즉위 40년 칭경(稱慶·경축) 예식을 열고, 이 자리에서 중립국임을 승인받으려고 했다"며 "이 계획은 콜레라가 만연해 예식이 연기되면서 무산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대한제국의 중립국 외교에 실질적 걸림돌로 작용한 사건은 제1차 영일동맹이었다. 영국과 일본은 1902년 1월 각각 청과 대한제국에서 정치적·상업적 이익을 상호 보장한다는 협약을 맺었다.
이 명예교수는 "영일동맹에는 대한제국의 산업 근대화를 위한 외국 차관 교섭과 이와 병행한 중립국 승인 외교를 차단하려는 목적이 있었다"며 "중립국 외교는 일본의 방해와 저지 정책으로 모두 실패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일본은 한반도를 보호하는 것이 '동양의 평화'를 지킬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거짓 선전해 영국과 미국의 정치지도자들을 농락했다"고 비판했다.
그는 대한제국의 중립국 외교가 비록 성공을 거두지 못했지만 '투쟁'이라는 단어로 표현해도 될 만큼 치열하게 진행됐다는 사실을 거론하면서 "근대적 국가 운영의 틀을 도입하고자 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해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한편 이번 심포지엄에서는 대한제국과 미국의 관계, 대한제국을 둘러싼 각국의 경쟁, 근대 기술의 도입과 사회변화, 대한제국으로 가는 길목의 도시와 건축 등 다양한 주제 발표가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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