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시론] 모호한 트럼프 화법, 한반도 위기 부채질하지 말아야
(서울=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7일(현지시간) 북한과의 대화 무용론을 다시 제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트위터를 통해 "(전임) 대통령들과 그 정부는 25년간 북한과 대화를 해왔으며, 많은 합의가 이뤄졌고 막대한 돈도 지급됐으나 효과가 없었다"고 단언했다. 그러면서 "합의는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북한에 의해) 훼손돼 미국 협상가들을 바보로 만들었다"고 했다. 트럼프는 지난 1일에도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이 대북 대화 채널 2∼3개를 열어두고 있다며 북한과의 막후 접촉을 시사하자 트위터를 통해 '시간낭비'라고 했다. 자신의 국무장관을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엿새 만에 다시 대북 대화론에 쐐기를 박은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북 대화 무용론을 거듭 강조하면서도 "단 한 가지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 방법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 특유의 모호한 엄포성 발언을 한 것 같다. 군사적 해법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해석이 많지만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으니 확언하기도 어렵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5일에는 백악관에서 군 수뇌부와 북한·이란 문제를 논의한 뒤 단체 사진을 촬영하면서 "이게 뭘 의미하는지 아는가"라며 묻고 "폭풍 전의 고요"(the calm before the storm)라고 말해 우려를 낳았다. 기자들이 '폭풍'의 의미가 무엇인지 잇따라 물었지만, 답변을 피한 채 "이 방에는 세계 최고의 군인들이 있다. 알게 될 것"이라고만 했다. 백악관 브리핑에서도 '폭풍'의 실체를 놓고 질문이 이어졌으나 허커비 샌더스 대변인은 명확한 답변을 내놓지 못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군 수뇌부 회의에서 북한을 언급하며 "여러분이 내게 폭넓은 군사옵션을 제공하기를 기대한다"고 주문한 뒤에 나온 발언이라 북한에 대한 군사행동을 의미하는 것이란 해석이 가장 많이 제기됐다. 트럼프 대통령이 금주 중에 이란과의 핵협정 파기를 선언할 것이라는 보도가 나온 직후여서 이란을 겨냥한 것이라는 분석도 이어졌다. 일각에서는 아무 의미가 없는 말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폭풍'의 실체를 놓고 추론이 분분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일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노렸을 수 있는 것이다. 미국 내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한동안 맡았던 리얼리티 쇼의 호스트 습성을 내보인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됐다. 국내외의 주목을 받고자 중대한 외교ㆍ안보 현안을 마치 리얼리티 쇼에서 시청자를 붙잡아두듯 아슬아슬하게 다루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이라면 우리로서는 걱정거리를 한 가지 더 갖게 된 셈이다.
한반도 안보는 북한의 추가도발 우려가 고조되면서 또 한 번 요동칠 위기를 맞고 있다. 북한은 7일 노동당 제7기 2차 전원회의를 열어 핵·경제 건설 병진 노선의 지속적인 추진을 결의했다.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보고에는 구체적인 군사적 조치나 위협을 담지 않았으나 핵·경제 병진 노선의 지속적인 추진을 내세운 만큼 추가도발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에 힘이 실리는 분위기다. 지난 2일부터 닷새 동안 평양을 방문한 러시아 국가두마(하원) 의원들도 북한이 새로운 장거리 미사일 시험발사를 준비 중이라고 전했다. 그 시기는 노동당 창건일인 10일이나 18일 제19차 중국 당 대회 전후가 될 것이란 관측이 많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말 한마디, 트윗 하나에 한반도 안보가 휘청거리며 '트럼프 리스크'가 커지는 것은 절대로 바람직하지 않다. 북한에 대한 압박을 최대치로 끌어올리려는 전략적 계산이 담겨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하지만 당장에는 위기와 혼란만 더 심화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미국 내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의 모호한 발언과 트윗을 놓고 비판과 혼선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우리 외교·안보 당국이 중심을 잡고 대처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그럴수록 한미 간의 소통 채널을 더 단단히 관리하면서 트럼프 행정부의 진의를 파악하고 대처하는 데 배증의 노력을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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