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근 전 감독 "한국 야구 자존심 살린 이승엽, 정말 수고했다"

입력 2017-10-04 07:04
김성근 전 감독 "한국 야구 자존심 살린 이승엽, 정말 수고했다"

2005년 지바 롯데에서 이승엽과 함께 훈련



(대구=연합뉴스) 하남직 기자 = 2005년 9월 23일.

김성근(74) 전 한화 이글스 감독과 이승엽(41·삼성 라이온즈)은 날짜도 정확하게 기억한다.

당시 일본프로야구 지바롯데 마린스에 함께 몸담았던 둘은 2005년 9월 23일 라쿠텐 골든이글스와 경기가 끝난 뒤, 원정 숙소에서 만났다.

김 전 감독이 맥주캔을 들고 마개까지 열었다.

"고맙다. 한국 야구의 자존심을 살렸다."

술을 즐기지 않은 이승엽도 그날만큼은 "맥주가 달고 맛있었다"고 했다.

그날, 이승엽은 시즌 30호 홈런을 쳤다.

김성근 전 감독은 이승엽이 가장 어려울 때 옆을 지켰다.

이승엽은 2003년 당시 아시아 신기록인 56홈런을 치고, 시즌 종료 뒤 일본프로야구 지바롯데로 진출했다.





지바롯데는 김성근 전 감독을 순회코치로 영입했다.

이승엽은 2004년 14홈런에 그쳤다. 한국 홈런왕의 자존심이 구겨졌다.

김 감독은 "이승엽을 한 번 크게 혼낸 적이 있다. 그 다음 날부터 이승엽이 하루에 공 1천 개를 쳤다"며 "기술보다는 정신적으로 무장한 것이다. 이후 홈런을 꾸준히 쳤다"고 했다.

이승엽은 2005년 30홈런을 치며 다시 자존심을 세웠다.

김 감독은 "(당시는) 일본 야구가 한국 야구를 얕보는 시기였다"며 "이승엽이 30홈런을 치면서 시선이 달라졌다. 이승엽이 30홈런을 친 날 함께 맥주를 마시며 처음으로 '정말 잘했다'고 칭찬했다"고 떠올렸다.

힘겨운 2004년을 보낸 이승엽은 2005년 부활해, 2006년 일본 최고 인기팀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입단했다. 상징적인 '요미우리 4번타자'로 등극하기도 했다.

이후에도 이승엽 앞에는 고난이 있었다.

그러나 이승엽은 2005년처럼, 땀과 눈물로 위기를 극복했다.

김성근 전 감독은 이승엽의 은퇴식이 열린 3일 "이승엽은 여전히 경쟁력 있는 타자다. 은퇴를 만류하고 싶다"면서도 "숱한 고비를 잘 넘긴 이승엽이 정말 자랑스럽다. '정말 고생했다. 수고했다. 고맙다'라는 말을 전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이승엽도 3일 은퇴식에서 "지바롯데에서 방황하고 있을 때 정신 무장을 도와주신 김성근 감독님께 정말 감사하다"고 했다.



jiks7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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