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휘황찬란한 불빛 사이 '살육의 현장'엔 적막만이 흘렀다
만델레이베이호텔 32층 깨진 창문 '흉물'로…경찰 삼엄한 통제
고층객실서 총기 쏜 각도 희비 갈라…콘서트 조명·소음에 늦게 대응
관광객들 삼삼오오 찾아…어두운 표정속 허술한 보안·총기규제 질타
(라스베이거스=연합뉴스) 옥철 특파원 = 미국 네바다 주 라스베이거스 중심부 스트립 지역엔 여느 때와 다름없이 휘황찬란한 네온사인이 번쩍이고 있었다.
2일 오후(현지시간) 스트립 남쪽 사우스 라스베이거스 블러바드 쪽으로 방향을 틀자 경찰 통제선이 눈에 들어왔다.
사거리인 이스트 트로피카나 애비뉴까지는 도박과 환락의 도시답게 눈부신 카지노 사인이 돌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남쪽으로 방향을 틀면 나타나는 거대한 만델레이 베이 호텔 앞은 적막에 휩싸여 있었다.
경찰이 사우스 라스베이거스 블러바드와 만델레이 베이 로드의 차량 진출입을 막은 탓에 거리가 텅 비었기 때문이지만, 전날 밤 컨트리뮤직 페스티벌을 킬링필드로 만든 참극의 끔찍함이 만 하루가 지났는데도 그대로 남아있는 듯했다.
총격범 스티븐 패덕이 루트 91 하베스트 콘서트에 모인 2만 2천여 명의 청중을 겨냥해 빗발치듯 캘리버 자동화기를 쏘아댄 만델레이 베이 호텔 32층 객실 창문은 마치 돌을 던져 깨트린 듯이 흉물스러운 모양으로 노출돼 있다.
바람이 불면서 깨진 창문 사이로 커튼이 약간씩 나부꼈다.
미 역사상 최악의 총기 참사로 59명의 목숨을 앗아가고 500여 명의 부상자가 나온 길 건너편 콘서트장은 그냥 평범한 공터처럼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였다.
경찰은 콘서트장 쪽으로 들어가는 아르코 주유소 앞길도 노란 통제선을 치고 차량 진입을 막았다.
만델레이 베이 호텔 앞에는 NBC, ABC, CBS 등 공중파 방송사 중계 차량은 물론 인근 로스앤젤레스에서 온 KTLA 방송차 등이 줄지어 늘어섰다.
앵커들이 돌아가며 인도 연석 위에 올라서 만델레이 베이 호텔의 깨진 창문을 배경으로 현장 리포트를 이어갔다.
현장에서 단번에 드는 의아한 점은 범인이 발포한 객실부터 콘서트장까지의 거리다.
호텔과 콘서트장 사이의 사우스 라스베이거스 블러바드는 좌회전용 포켓 차로를 제외하고도 왕복 4차로의 제법 큰길이다.
아무리 자동화기를 수백 발 발사했다 해도 육안으로 보기에 꽤 먼 거리에서 그렇게 많은 사상자가 나왔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NBC 방송 기자는 "고층 빌딩에 올라 걸터앉은 듯한 총격범의 위치와 지상의 목표물이 돼 버린 청중의 위치가 총격의 충격을 극대화하는 각도를 만든 것이 수많은 사망자가 나온 이유 중 하나"라고 해석했다.
총격범의 위치는 지상 100m 이상이고 길 건너편 콘서트장까지의 거리는 300m 정도인데 그런 거리와 각도가 대량 살육을 가능하게 한 것이다.
15종이 넘는 온갖 화기류를 호텔 방에 갖다놓은 총격범 패덕의 치밀함이 몸서리를 치게 만드는 광경이다.
콘서트장 앞쪽에서 경계 근무를 서고 있던 라스베이거스 메트로폴리탄 경찰서 소속 N.헬라니 경관에게 중년 부부로 보이는 남성과 여성이 다가서더니 득달같이 화를 냈다.
중년 부부는 경관에게 "2만 명이 넘는 청중이 몰렸는데 어떻게 한 명의 범인에 의해 그런 참극이 벌어질 수 있느냐"며 따져 물었다.
이들 부부는 인근 룩소 호텔에 어젯밤 묵었는데 외출했다 돌아오면서 사건 현장을 목격했다고 한다.
아내로 보이는 여성은 금세 눈시울을 붉히며 흐느꼈다.
헬라니 경관은 "콘서트장에서 조명이 사방으로 비치고 군데군데 스피커에서 음악 소리가 나오다 보니 처음엔 총격 소리를 청중들이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한 것 같다"고 말하며 진땀을 흘렸다.
경찰 통제선 근처까지 차를 몰고 온 택시 기사인 배리 씨는 "콘서트장이 어디냐. 저렇게 먼데 사람들이 죽었나"라며 혀를 내둘렀다.
인근 트로피카나 주차장의 발레파킹 담당 직원은 "어젯밤 사건이 일어나던 시간에 야근 근무를 하고 있었는데 폭죽을 터트리는 줄 알았다. 경찰 순찰자들이 막 몰려오고 나서야 무슨 일이 났구나 하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만델레이 베이 호텔 쪽으로 통하는 트로피카나 애비뉴에서는 시민들이 삼삼오오 몰려들었다.
저마다 휴대전화를 들고 만델레이 베이 호텔 객실을 찍었다.
셀카를 찍는 관광객도 있었지만 표정은 한결같이 어두웠다.
관광객으로 보이는 한 백인 남성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총기 규제가 필요하다고 보냐'고 묻자 "지금은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다"며 손사래를 쳤다.
다른 관광객들은 범인이 그 많은 총기류를 호텔 방까지 버젓이 들고 올라갔다는 사실에 고개를 흔들었다. 총기류 규제가 그만큼 허술하다는 반증이란 목소리도 나왔다.
참극의 현장에서 10분 정도 걸어 나오자 뉴욕뉴욕 호텔 앞에는 한 무리의 젊은이들이 캔맥주를 손에 들고 흥에 취해 있었다.
라스베이거스 관광객들의 표정에는 그림자가 묻어났지만 머리 위로 돌아가는 네온사인은 변함없이 휘황찬란하기만 했다.
oakchu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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