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中, 北기업 120일내 폐쇄 조치 발표후 북한식당 '썰렁'
발표 다음 날 평소처럼 영업…종업원들 불안한 기색
경영난에 '한국손님 사절'도 사라져…"명의변경해 생존시도" 전망도
(베이징·선양·상하이=연합뉴스) 정주호 홍창진 김진방 특파원 = 중국 정부가 이달 12일 발표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재 결의 2375호 기준으로 120일 이내에 북한이 중국 내 설립한 기업들은 폐쇄하라고 28일 공지하면서, 그 주요 대상인 북한 식당들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북한이 중국 파트너와 합작·합자 형태로 설립, 운영해온 중국 내 130여 곳의 북한식당은 이제 짐을 싸야 할 처지가 됐기 때문이다.
이들 북한식당은 중국의 국경절 연휴(10월 2~8일)와 추석 명절(4일)을 앞두고 '쌍절(雙節) 특수'를 기대했으나 졸지에 존폐 기로에 서게 돼 전전긍긍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 당국의 폐쇄 조치가 발표된 다음날인 29일 정오께 수도 베이징(北京)과 상하이(上海), 북중 접경도시인 랴오닝(遼寧)성 선양(瀋陽)에 있는 북한식당을 둘러보니 평소처럼 영업을 했지만 손님이 없을 뿐더러 종업원들은 불확실한 미래에 불안한 기색을 나타냈다.
베이징 시내 중심에 있는 유명 북한 음식점인 평양 은반관은 한참 손님이 붐빌 정오가 넘어도 영업을 하는 식당이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말 그대로 '텅' 비어 있었다.
예약을 받는 내실은 물론이고 홀에도 빈 테이블에 식기 등이 세팅만 돼 있을 뿐 손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식사를 마치고 나올 때쯤 중국인으로 보이는 손님 2명이 온 것 외에는 추가로 손님이 오진 않았다.
손님이 없는 상황이 익숙한 듯 공연을 담당하는 종업원들은 음향기기가 있는 내실에서 노래 등 공연 연습을 하기도 했다.
주방과 홀 서빙을 담당하는 종업원들도 한가롭게 홀을 오가며 동료와 한담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베이징의 평양 은반관 종업원에게 '중국 내 북한식당들이 곧 문을 닫아야 한다는 소문이 있는데 사실이냐'고 묻자 "소문은 들었는데 아직 특별한 공지나 통보가 온 것은 없다"면서 "예약도 받고 정상적으로 운영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 종업원은 최근 손님이 많이 줄었느냐는 질문에는 "홀에만 사람이 없지 내실에는 손님이 많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종업원 말과 달리 내실이 있는 복도에서 음식을 서빙하는 종업원이나 손님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한국인과 북한인이 많이 찾는 선양시 시타제(西塔街)의 북한식당들은 작년 4월 저장(浙江)성 닝보(寧波) 북한식당 종업원 탈출사건 여파로 한국인 손님을 사절하던 태도를 완전히 바꿔 아무런 제재 없이 손님을 받았다.
한 북한식당은 입구를 거쳐 2층 테이블에 앉을 때까지 제지가 없었고 음식을 주문하는 과정에서 한국말로 문의했으나 종업원이 자연스럽게 응대하고 넘어갔다.
다른 북한식당에서도 출입문을 통과해 테이블로 안내하는 종업원이 신원 확인을 하지 않았다.
올 봄까지만 해도 이들 식당에 들어가려면 입구에 선 종업원들이 손님 국적을 묻고 "남조선 손님들에겐 봉사하지 않습니다"고 퇴짜를 놨으나 최근의 경영난이 반영된 것으로 보였다.
음식을 가져온 종업원에게 "중국 정부가 북한식당의 폐쇄한다고 뉴스에 나왔는데 사실이냐"고 묻자 종업원은 "그런 일 없다. 우리는 모르는 일이다"고 답변했다.
"식당문을 닫으면 여기서 일하는 복무원(服務員·종업원을 일컫는 중국식 표현)은 모두 북한으로 돌아가야 하냐"고 재차 물었을 때 종업원은 "정말 그렇게 될 것 같냐?"며 다소 불안한 기색을 나타냈다.
식당 카운터에서 계산을 돕던 종업원은 폐쇄 여부에 관한 질문에 답하지 않고 시선을 외면하며 '빨리 가라'는 반응을 보였다.
테이블에 앉아서 20여 분간 주위를 살펴보니 4~7명씩 앉게 된 테이블 9개에 식사하는 손님이 전혀 없었다.
북한 여종업원이 파견돼 요리·접객서비스·공연을 하는 상하이의 북중 합작 식당 10여 곳 중 자딩(嘉定)구에 위치한 식당 한곳이 지난달 문을 닫았고 앞서 한인타운 훙취안(紅泉)루의 한 북한식당도 영업난을 겪다가 다른 지역으로 이전했다.
현지에서 북한 여종업원 8명을 고용해 맥주바를 운영하는 중국인 대표는 "(유엔 대북제재에 동참한 중국 정부 방침으로)신규 공연비자 발급이 제대로 안돼 기존에 나와있던 사람들로만 운영해야 하고 한국인을 상대한 업소 홍보도 쉽지 않은 형편"이라고 말했다.
북한식당의 음식이 비싼데다가 한국인 입맛에 맞지 않다는 평판이 나오면서 영업에 어려움을 겪는 상황이다.
이 대표는 "예전엔 월 27만∼30만 위안(약 4천642만~5천158만원)의 매출을 올렸으나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고 전했다.
상하이 북한식당들은 한국인 손님이 찾지 않아 경영난이 본격화된 작년부터 일식집이나 훠궈(火鍋·중국식 샤부샤부)식당·맥주바·사우나 찜질방 형태로 업태를 다양화했다.
중국 내 대북 소식통은 "최근 중국 북한식당의 폐업이 잦은 것은 주고객층이 발길을 끊으면서 장사가 잘 안되기 때문"이라며 "이들 식당이 당국의 유예기간인 120일 동안 중국인 업주 명의로 변경해 생존을 시도하고 비자를 통해 북한 종업원을 통제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realism@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