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자리를 묻고 또 묻는다…이병률 새 시집
신간 '바다는 잘 있습니다'
(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 '끌림' 등 여행산문집과 감성적 언어의 시편으로 사랑받아온 시인 이병률(50)이 다섯 번째 시집 '바다는 잘 있습니다'(문학과지성사)를 냈다. '눈사람 여관'(2013) 이후 4년간 쓰고 발표한 60편의 시는 사람의 자리를 반복해 물으며 안부를 확인한다.
텅 빈 자리가 언젠가 채워지리라는 기대에서 비밀 하나를 털어놓는다. 시인은 누가, 어디서, 몇 시에 올지 모른 채 버스를 타고 터미널에 간다. "이렇게 말하는 것으로 그동안의 오해가 걷힐 것 같아/ 최선을 다해 당신에게 말하건대/ 내가 가끔씩 사라져서/ 한사코 터미널에 가는 것은/ 오지 않을 사람이 저녁을 앞세워 올 것 같아서다" ('이구아수 폭포 가는 방법' 부분)
하지만 터미널이라고 해서 언제나 만남과 환대의 장소는 아니다. 터미널에서 스친 한 노인이 전화기에 대고 말한다. "내가 순수하게 했는데,/ 나한테 이러믄 안 되지" 당장 시인의 일은 그런 소리를 "마음의 2층"에 모으되 "마음의 1층"에 흘러들지 않게 하는 것이다.
"나의 완성은 그렇다/ 지구 사람 가운데 나에게 연(緣)이 하나 있다면/ 당신들의 흩어짐을 막는 것/ 지금은 다만 내 마음의 1층과 2층을 더디게 터서/ 언제쯤 나는 귀한 사람이 되려는지 지켜보자는 것// 나의 궁리는 그렇다" ('지구 서랍' 부분)
시인은 집 앞 굵은 나뭇가지와, 그 나뭇가지를 붙들고 있던 위층 사는 사내와, 한밤중 그 나뭇가지를 내어다보는 자신을 별자리처럼 잇는다. "척척 선을 이을 때마다/ 척척 허공에 자국이 남으면서/ 서로 놓치지 말고 자자는 듯/ 사람 자리 하나가 생기는 밤이다" ('사람의 자리' 부분)
"이쪽 줄의 사람들은 아예 감정이 없으며/ 저쪽 줄의 사람들은 감정을 숨긴다" ('다시 태어나거든' 부분) 바람에 집 안쪽으로 밀려온 커튼에서, 잠시 자리를 비운 탁자 위에 떨어진 이파리에서 사람의 기척을 감지하는 시인의 마음에는 기대감과 쓸쓸함이 섞여 있다. 이어지던 시인의 혼잣말은 시집 뒤쪽에 가서 권유로 바뀐다.
"우리가 살아 있는 세계는/ 우리가 살아가야 할 세계와 다를 테니/ 그때는 사랑이 많은 사람이 되어 만나자// 무심함을/ 단순함을/ 오래 바라보는 사람이 되어 만나자// (…)// 과연 우리는 점 하나로 온 것이 맞는지 그러면 산 것인지 버틴 것인지/ 그 의문마저 쓸슬해 문득 멈추는 일이 많았으니/ 서로를 부둥켜안고 지내지 않으면 안 되게 살자" ('이 넉넉한 쓸쓸함' 부분) 144쪽. 8천원.
dada@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