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이 나빠서 총탄 맞았다는 게 말이 되나…軍 책임 회피 급급"

입력 2017-09-28 12:01
수정 2017-09-28 12:59
"운이 나빠서 총탄 맞았다는 게 말이 되나…軍 책임 회피 급급"

"사격장 안전 문제 희석하려고 '도비탄' 운운하는 것에 불과해"

아버지 "진정성 있는 조사 이뤄지지 않으면 장례 거부하겠다"

(철원=연합뉴스) 이재현 기자 = "내 아들이 너무 운이 나빠서 총탄에 맞았다는 게 말이 되나, 도비탄이라니…"

진지 공사를 마치고 부대로 복귀 중 갑자기 날아든 총탄에 맞아 숨진 육군 6사단 소속 이모(22) 일병의 유족들은 '도비탄으로 인한 총상'이라는 군 당국의 무책임한 설명에 또 한 번 분노했다.

이 일병의 아버지(50)는 28일 "아들을 한순간에 잃은 것도 기가 막힌 데 군 당국은 '도비탄' 운운하면서 책임을 회피하려 하고, 군 사격장의 총체적 안전 문제를 희석하기에만 급급해 한다"며 "군 당국의 진정성 있는 조사가 이뤄지지 않고서는 장례 절차를 거부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사고 난 사격장 주변에 철조망 같은 건 전혀 없었고 나무뿐이었다"며 "아들이 총탄을 맞은 사격장 위쪽에 난 전술도로는 사격장 높이와 거의 같았다"고 밝혔다.

또 "아들의 사망 원인이 '도비탄'으로 추정된다는 군 당국의 설명에 너무나 놀랐다"며 "도비탄이라니…"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아버지는 "도비탄에 맞아 사망했다고 하면 책임 소재를 파악하기 어려워진다"며 "그래서 도비탄이라 하는 모양인데, 내 아들 한순간에 잃은 것도 기가 막힌 데 군 당국이 이런 식으로 사격장의 총체적 안전 문제를 희석하려고 한다"고 강조했다.

이씨는 "사격한 부대의 통제병은 자신이 뭘 할지도 지시받지 않은 채 왔다고 우리 앞에서 진술했다"며 "사격장 위에 난 전술도로도 그렇고 총체적인 안전불감증이 아닐 수 없다"고 어이없어 했다.

이어 "사고가 난 사격장이 정말 안전하다면 장군들 자녀도 여기에 오라고 하고 싶다"고 토로했다.

그는 "사고 원인을 정확하게 얘기를 하고 사과하면 되지 않나"라며 "아직 부검이고 뭐고 진행 못 했다. 겨우 빈소만 차렸다"고 힘없이 말했다.

숨진 이 일병은 지난 26일 오후 4시 10분께 철원군 동송읍 금학산 일대에서 전투진지 공사 작업을 마치고 복귀 중 갑자기 날아든 총탄에 맞아 숨졌다.

당시 이 일병은 동료 27명과 함께 작업을 마치고 걸어서 이동 중이었다.

이 일병은 본대 행렬에서 조금 떨어져 부소대장 등 2명과 함께 맨 뒤에 걸어가던 중 우측 머리쪽에 총탄을 맞고 쓰러졌다.

작업을 마치고 복귀 중이었기 때문에 이 일병은 방탄 헬멧이 아닌 일명 '정글모'라는 둥근 챙이 달린 천 모자를 쓰고 있었다.

사격장과 사고 지점인 전술도로는 400여m가량 떨어져 있다. K-2 소총의 유효 사거리가 460m인 점을 고려하면 위험한 구간인 셈이다.

그런데도 이 일병과 부대원은 아무런 통제 없이 인솔자와 함께 이 전술도로 이용해 부대로 이동 중이었다.

유족 등이 사격장의 허술한 통제와 부대 이동 간의 안전불감증 등 총제적 안전 문제를 지적하는 이유다.

한편 군 당국은 송영무 국방부 장관의 지시로 이 사건을 특별수사에 나섰다.

국방부는 이날 "송영무 국방부 장관은 오늘 최근 철원 지역에서 발생한 육군 병사 사망 사고와 관련해 국방부 조사본부에 '즉시 특별수사에 착수할 것'을 지시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국방부 조사본부는 이날 오전 9시부로 관련 사고에 대한 수사를 개시했다.

j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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