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훈의 골프산책]세계화의 덫에 걸린 LPGA투어
대회 유치에 급급하다 대회 수준 담보 못 해…메이저대회 파행에 한 달 전 대회 취소도
(서울=연합뉴스) 권훈 기자= 28일 개막한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맥케이슨 뉴질랜드여자오픈에는 세계랭킹 10위 이내 선수가 딱 한 명 출전했다.
뉴질랜드 국적인 세계랭킹 8위 리디아 고뿐이다.
세계랭킹 20위까지 범위를 넓히면 12위 브룩 헨더슨(캐나다), 20위 이민지(호주) 등 3명이다.
상금랭킹 20위 이내 선수 역시 5위 헨더슨, 17위 이민지, 18위 다니엘 강(미국), 그리고 19위 리디아 고 등 4명만 출전 선수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사실상 투어 대회라 말하기 민망한 실정이다.
정상급 선수들이 외면한 이유는 복합적이다.
우선 뉴질랜드는 너무 멀다. 가장 많은 선수가 사는 플로리다주 올랜도에서 뉴질랜드 오클랜드까지 비행기로 21시간이 걸린다.
한차례 대회를 치르려고 왕복 40시간의 비행시간을 감내할 선수는 흔치 않다.
뉴질랜드여자오픈은 총상금도 130만 달러로 많은 편이 아니다. 더구나 올해 처음 LPGA투어에 편입돼 역사나 전통, 권위 등 다른 매력이 있는 것도 아니다.
대회는 정상급 선수가 출전하지 않으면 팬들의 이목을 끌 수가 없다.
뉴질랜드여자오픈이 큰 관심을 끌지 못하는 사실상 B급 대회가 된 것은 LPGA투어의 세계화 전략과 무관하지 않다.
LPGA투어는 최근 몇 년 동안 세계화 전략에 몰두했다.
미국에서 대회 스폰서 유치가 신통치 않자 유럽과 아시아 등 미국 밖으로 눈을 돌렸다.
세계화 전략에 가속 페달을 밟은 결과 LPGA투어는 이제 미국 투어가 아니다.
올해 LPGA투어 31개 대회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15개 대회 개최 장소가 미국 밖이다.
심리적으로 미국과 다름없다고 여기는 북미 지역 대회 3개를 빼도 12개 대회는 태평양이나 대서양을 건너서 열린다.
이런 세계화 전략 덕에 LPGA투어는 연간 700억 원 이상의 상금을 내걸고 30개가 넘는 대회를 치르는 여자 골프 최고의 투어로서 위상을 다질 수 있었다.
하지만 부작용도 적지 않다.
대회가 세계 곳곳에서 열리면서 선수들은 장거리 이동에 내몰렸다.
한국, 대만, 말레이시아, 일본, 중국으로 이어지는 10월 아시안 스윙은 그나마 이동 거리 부담이 덜하다.
2월에서 3월 사이에 태국과 싱가포르에 열리는 동남아시아 2개 대회도 선수들은 큰 부담 없이 참가한다.
하지만 인접한 지역인 호주와 뉴질랜드 대회가 2월과 9월로 나뉘어 있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대회 일정이나 정체성에 대한 원칙이나 관리 없이 대회 유치에 급급하다 보니 실망스러운 일이 터져 나왔다.
뉴질랜드여자오픈이 상위 랭커 무더기 불참 사태를 빚은 것은 약과다.
10월 5∼8일 중국 상하이에서 열릴 예정이던 알리스포츠 LPGA 토너먼트가 개최를 한 달도 채 안 남기고 갑자기 취소되는 황당한 사건은 LPGA투어의 세계화가 지닌 취약성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1년 전에 이미 확정해 선수와 미디어에 공표한 대회가 한 달 전에 없었던 일이 됐지만, LPGA투어는 '중국 지방 정부가 대회 개최를 승인해주지 않는다'는 말뿐 이렇다 할 대책이 없다.
프랑스에서 열리는 에비앙 챔피언십이 뜬금없이 다섯 번째 메이저대회로 승격된 것도 LPGA투어가 세계화에 목을 매다 벌어진 '참사'라는 게 정설이다.
일각에서는 에비앙 챔피언십이 돈으로 메이저대회라는 명예를 샀다고 비난한다.
2013년부터 메이저대회로 승격된 에비앙 챔피언십은 올해 큰 사고를 치고 말았다.
1라운드가 악천후로 중단되자 순연 대신 1라운드 경기를 통째로 취소해버린 결정은 두고두고 뒷말을 낳았다.
예비일조차 없이 54홀 경기로 우승자를 가린 것은 명색이 메이저대회라면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다는 목소리가 높다.
중국 대회 취소와 에비앙 챔피언십 파행 운영에 대해 LPGA투어가 미국 밖에서 대회를 유치하느라 대회의 질적 수준을 담보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뒤따른다.
LPGA투어는 요즘 유럽여자프로골프투어(LET)와 합병 논의가 활발하다. 빈사 상태에 빠진 LET는 LPGA투어와 합병 말고는 대안이 없다는 분위기다.
두 투어가 합병하면 LPGA투어는 중동과 아프리카 대륙까지 뻗어 나간다. 말 그대로 세계화가 완성되는 셈이다.
그러나 LPGA투어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태를 보면 LPGA투어의 세계화는 기회인 동시에 덫이기도 하다는 우려를 지울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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