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당당한 치매 환자 봤나요?"…함박웃음 지은 딸
충남 예산 '치매 극복 수기 공모전'서 박민자씨 대상
(예산=연합뉴스) 한종구 기자 = "대중들 앞에서 직접 찍은 사진에 관해 설명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면 누가 치매 환자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너무나 자신에 차고 당당하며 행복한 모습이었습니다."
25일 충남 예산군 문예회관에서 열린 치매 극복의 날 행사에서 예산군보건소 주최 '제1회 치매 극복 수기' 공모전 대상 수상자인 박민자(40·여)씨는 치매 환자 가족답지 않게 함박웃음을 지으면 수기를 읽어 나갔다.
박씨의 어머니 이영순(71)씨가 알츠하이머성 치매 진단을 받은 것은 10여년 전이다.
당시 박씨의 아버지는 암 수술을 받고 회복 중이었다.
온 가족이 아버지에게 신경을 쓰던 사이 어머니에게 내려진 치매 진단은 말 그대로 청천벽력이었다.
박씨는 "밭농사와 벼농사로 피땀 흘려 돈 벌어 5남매 공부시킨 뒤 주황색 기와가 있는 벽돌집을 새로 지으며 살만하다 싶으니 그놈이 찾아왔다"며 "우리 엄마가 불쌍했다. 그렇게 고생했는데 하나님이 너무하다 싶었다"고 회상했다.
박씨는 어머니와 함께 인근 보건소에서 운영하는 재활 프로그램에 참가했다.
어머니는 보건소에서 거울·시계·휴지걸이 등 다양한 소품을 만드는가 하면 노래 부르기와 체조 등을 했고 친구도 사귀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재활 프로그램이 없었다면 엄마 혼자 집에 있었을 텐데'라는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철렁하다.
보건소 프로그램과 함께 치매 극복에 도움을 준 것은 어머니의 긍정적인 성격이다.
박씨는 일본 가족여행 당시 새벽에 화장실에 간다며 나간 어머니가 돌아오지 않았던 일을 떠올렸다.
"울면서 사라진 엄마를 찾아 헤매고 있는데 저 멀리서 '나 여기 있다'라며 엄마가 다가오는 거예요. 천만다행으로 엄마는 딸들과 여행 온 것을 기억하고 딸들을 기다리고 있던 거예요."
박씨는 그날을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하다고 했다.
이밖에 노래, 운동, 화투 놀이 등도 어머니의 치매 극복에 큰 도움을 줬다고 박씨는 평가했다.
박씨는 과거 건강했던 어머니의 모습이 그립지만, 시간이 흐르면 지금의 어머니가 사무치게 보고 싶은 날이 올 거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요즘은 부쩍 어머니와 함께 사진 찍는 시간이 늘었다.
그는 "아무리 치매가 있다고 해도 나의 엄마고, 내 딸들의 할머니라는 사실은 변함없다"며 "지금까지 자식들과 손자들에게 엄마와 할머니로 인정받을 수 있는 건 그동안 주신 무한하고 헌신적인 사랑 때문일 것"이라고 썼다.
이어 "지금은 똑같은 것을 묻고 잠깐의 일을 기억 못 하는 정도지만 더 진행되면 (어떻게 될까) 생각조차 하기 무섭고 두렵다"면서도 "하지만 벌써 두려워하면서 소중한 현재의 시간을 버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박씨는 "한평생 남편과 자식을 바라보며 헌신하신 엄마에게 감사하며 자식들, 며느리, 사위들, 손자들 모두를 기억하고 사랑해주는 것에 대해서도 고맙게 생각한다"며 "앞으로도 지금 이대로 우리 모두를 사랑하고 기억해 줬으면 한다. 사랑한다"고 글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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