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연임 성공에도 웃지못한 메르켈…수면유세로 AfD 반사이익 비판
'좌클릭'으로 호평 받았으나 선거 결과로 '우클릭' 전망
자축해야하는 날 시험대에 서…난민·외교문제 등 해결과제 산적
(베를린=연합뉴스) 이광빈 특파원 =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24일(현지시간) 4선 연임에 성공했지만 웃지 못했다.
독일 최장수 총리 헬무트 콜 전 총리와 같은 반열에 오른 뒤 메르켈 총리의 소감은 마치 패배한 정당의 대표 같았다.
그는 "우리는 더 좋은 결과를 희망했었다"라며 "유권자들의 걱정에 귀 기울이면서 좋은 정치를 통해 다시 그들에게 지지를 얻을 것"이라고 말했다.
자신이 이끄는 집권 기독민주·기독사회당 연합의 득표율이 지난 총선보다 10% 포인트 가까이 떨어질 것으로 예상됐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난관이 예상되던 연정 구성 협상은 더 어려워질 전망이다. 특히 제 3정당으로 연방의회에 입성하는 반(反)난민·반유로화 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AfD)을 마주해야 하는 점도 곤혹스럽다.
더구나 AfD의 성장에 대한 책임론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상황이다.
메르켈 총리는 한동안 가시밭길을 걸을 것으로 예상된다.
유럽연합(EU)의 난민 대응 문제, 터키와의 갈등 문제, 자국 우선주의 경향을 보이는 미국과의 관계 설정 등 외교 문제도 산적해 있다.
자축해야 하는 날, 메르켈 총리는 다시 한 번 시험대에 섰다.
물론, 역사적인 4선 연임의 성공은 안정적이 리더십과 보수와 진보를 아우른 정책적 유연함이 바탕이 됐다.
지지층이 상당히 이탈했지만 여전히 경제적 번영에 만족감을 보이면서 사회적 안정을 요구하는 독일인의 선택을 다시 한 번 이끌었다.
◇ 올초 슐츠에게 한 때 역전 허용…지방선거 승리후 대세론 = 메르켈 총리는 올 초 한 때 위기를 맞았다. 돌풍을 일으킨 마르틴 슐츠 사회민주당 총리 후보에게 지지율이 역전당하며 위기에 처했다.
그러나, 지방선거에서 잇따라 승전보를 올리며 슐츠 후보를 멀찌감치 따돌렸다.
지난 3월 자를란트주 의회 선거에 이어 5월 레스비히홀슈타인주와 인구가 가장 많은 주인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선거에서 기민·가사 연합은 승리를 거두며 총선에서도 대세론을 안정적으로 형성했다.
◇ '수면유세' 비판받아…극우정당 부상의 '도우미' 비판도 = 메르켈 총리는 선거 기간 내내 '수면유세'를 야기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경쟁자에 대한 비판을 자제하고 논쟁이 불붙는 의제를 회피하는 인상도 남겼다. 메르켈 총리 이번 선거전에서 단지 한 차례 가진 슐츠 후보와의 양자 TV토론에서 우세를 보인 뒤 슐츠 후보의 추가 TV토론 제의를 단칼에 거절했다.
메르켈 총리는 아킬레스건으로 지목되던 디젤차 문제와 난민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해 상대의 예공을 차단했다.
디젤차 문제는 배출가스 조작 사건인 '디젤 스캔들'을 일으킨 자동차 업계 경영진의 도덕성을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책임을 돌렸다.
그러면서 2020년까지 전기차를 100만대 이상 운행되도록 하겠다는 기존 방침을 재확인하면서 전기차 기술에 대한 자동차 업계의 투자를 강조했다.
EU에 전기차 쿼터제를 둬야 한다며 치고 나간 슐츠 후보는 이런 메르켈 총리의 전략에 맞서 차별화에 실패했다.
난민 문제에 대해선 메르켈 총리는 2015년 가을 국경을 개방했던 자신의 결정이 인도주의적이었고 후회하지 않는다고 누차 역설했다.
그러면서도 유럽으로의 난민 유입 상황이 변하고 관련국들의 정책적 대응 역시 기민해진 만큼, 유사한 상황이 되풀이되지 않을 것이고 강조했다. 지지층 내에서도 퍼진 난민 문제에 대한 불안감을 불식시키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메르켈 총리의 이런 선거 전략은 AfD의 존재감을 부각시켰다는 비판을 받았다.
주요 정당 간에 정치적 및 정책적 쟁점이 형성되지 않은 가운데, 인종차별 발언 등의 논란을 일으킨 AfD로 관심의 초점이 이동했다는 것이다.
메르켈 총리 등 기민·기사 연합은 선거전 막판 AfD에 표를 던지느니 기권하는 게 낫다고 할 정도로 AfD에 날을 세웠지만 기세를 막지 못했다.
총선이 끝난 뒤 보수진영에선 메르켈 총리가 자신의 난민 정책을 옹호한 점이 패착이었다고 비판하는 분위기다.
◇ 우파면서도 '좌향좌'…4기 내각서는 '우향우' 전망 = 메르켈 총리는 2기와 3기 내각에서 좌파를 끌어안아 정국을 안정적으로 관리했다. 이는 4선 연임의 밑거름이 됐다.
메르켈 총리는 집권 2기까지 징병제의 모병제 전환과 원전 폐쇄 결정, 부모수당제도 도입 등 진보적인 정책을 도입했다.
3기 내각에서도 메르켈 총리는 최저임금제를 도입했다. 보수진영에서 꺼리던 난민도 받아들였다.
올해 보수진영이 강력 반발한 동성 결혼 합법화 법안에 대해 기민·기사당의 자유투표를 선택했다.
보수진영의 반발을 고려해 자신은 반대입장을 나타내면서도 법안이 연방의회에서 처리될 길을 열어준 절묘한 정치력을 구사했다.
이런 포용적인 행보로 '무티(독일어로 엄마) 리더십'이 더욱 주목을 받았다. 좌파 정당도 차별화를 시도하기가 어려웠던 터라 난감할 수밖에 없었다.
◇ 4기 내각 '우클릭' 전망도 = 그러나, 4기 내각에선 메르켈 총리가 우클릭을 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사민당이 야당으로 남겠다고 공언하면서 친(親)기업정당인 자유민주당 및 녹색당과의 이른바 '자메이카 연정' 외에는 대안이 없는 실정이다.
녹색당이 진보적 정책을 요구하겠지만, AfD의 성공을 본 보수성향의 기사당과 자민당은 위기의식을 느끼고 보수 정책을 강하게 밀어붙일 것으로 보인다.
특히 기사당과 자민당이 난민 문제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견지할 전망이다. 녹색당은 난민에 우호적인 만큼, 메르켈 총리의 고민이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 꼬인 외교 실타래 어떻게 풀까 = 난민 문제는 외교적으로도 현재 진행형이다. EU 국가에 대한 난민 배당 정책에 반대하는 국가들을 설득하며 EU의 구심력을 확보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외교적으로 고조되고 있는 터키와의 갈등 상황이 발등의 불이다. 양국 간 설전은 터키의 EU 가입 문제로까지 비화됐다. EU 내에서도 부담스러워하는 표정이 읽힌다.
미국과의 무역 역조 문제도 '시한폭탄'이다. '스트롱맨' 트럼프 대통령과의 껄끄러운 관계 속에서 이를 어떻게 해결할지가 주요 관전 포인트다.
메르켈 총리는 한반도 긴장상황에 대해서도 중재 역할을 강조했다. 향후 그의 외교력이 더욱 주목되는 이유다.
lkbin@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