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골프 시즌 4승 이정은 "'대세'란 칭호는 아직…"

입력 2017-09-24 18:05
여자 골프 시즌 4승 이정은 "'대세'란 칭호는 아직…"

"타이틀 생각은 지우고 우승만 목표로 삼는다"

"미국 진출은 생각 없었는데 박성현 선배 충고로 10%쯤 생겨"

(양주=연합뉴스) 권훈 기자= "제가 아직 '대세'라 불리기엔 아직이고요…4승 한 것만 해도 대단한 일인데 작년에 7승을 한 박성현 선배에 비하면 한참 모자랍니다."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OK저축은행 박세리 인비테이셔널 우승으로 시즌 4승 고지에 오른 이정은(21)은 '대세'나 '포스트 박성현'이라는 말에 손사래를 치기 바빴다.

상금랭킹 1위, 대상 포인트 1위, 평균타수 1위에 다승 선두 등 4개 부문 선두를 달린 이정은은 올해 KLPGA투어에서 가장 뜨거운 선수다.

이정은이라는 이름의 선수가 앞서 5명이나 KLPGA투어에 등록되어 있어 이름 뒤에 아라비아 숫자 '6'을 달고 다니는 이정은은 원래 별명이 '식스'(Six)였지만 요즘은 '핫식스'(Hot Six)가 됐다.

이정은은 이번 시즌 22개 대회에서 한 번도 컷 탈락이 없었고 다섯 차례 대회를 뺀 17개 대회에서 톱10에 입상했다.

톱10 입상률 77.3%는 2014년 김효주(22)가 세운 역대 최고 기록(78.3%)에 육박한다.

이정은은 뚜렷한 약점이 없다.

평균 비거리 16위(252.04야드)에 페어웨이 안착률 16위(78.09%)가 말해주듯 수준급 장타력과 정교함을 겸비했다. 아이언샷도 그린 적중률 3위(78.57%)에 오를 만큼 정확하다. 그린에서도 라운드당 평균 퍼트 3위(29.7개)로 정상급이다.

이정은은 "코치한테 맨날 그런 스윙으로 어떻게 우승하느냐는 지청구를 듣는다. 아직 보완할 점이 많다"고 몸을 낮췄다.

'대세'나 '포스트 박성현'이라는 말에도 "아직은 아니다"라고 고개를 저었다.

7승이나 쌓은 박성현과 비교할 대상이 아니라고 거듭 강조했다.

"그런 말은 전혀 와 닿지 않는다. 나는 4승을 한 것만도 대단한 것 같다. 박성현 선배랑 비교하기가 힘들다."

기술적인 면에서도 아직 가야 할 길이 멀었다고 했다.

이정은은 "이번에 최나연 선배와 1, 2라운드를 함께 치면서 벙커샷을 너무 잘해서 부러웠다. 나도 벙커샷을 비롯한 잔기술을 좀 더 익혀야 한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1승도 없었던 이정은이 올해 이렇게 괄목상대한 성적을 내는 원동력은 체력 관리다.

이정은은 "지난겨울 체력 훈련을 열심히 해서 비거리가 작년보다 늘었다. 올해 꾸준한 성적을 낼 수 있는 건 체력 훈련 덕이다. 월요일에는 누구나 쉬고 싶겠지만, 꾹 참고 꼭 체력 훈련을 한다"고 공개했다.

그러나 이정은의 진짜 강점은 정신력이다. 투어 동료들 사이에 '독종' 소리를 듣는 몇 안 되는 선수 가운데 한 명이다.

이정은은 "늘 좋은 컨디션으로 경기를 치르는 게 아니다. 컨디션이 나쁠 때도 톱10에 자주 들었던 건 정신력이었다"고 말했다.

최종 라운드에서도 이정은은 처음부터 끝까지 강한 집중력을 유지하는 강철 멘탈을 과시했다.

3타차 선두로 시작한 이정은은 "특히 베스트샷을 친 다음 날 성적이 썩 좋지 않아서 걱정이 많았다. 색다른 압박감이었다. 하지만 그걸 이겨낸 게 대견스럽다"고 자신을 칭찬했다.

이날 리드를 한 번도 뺏긴 적도 없고, 1타 이내로 쫓긴 적도 없지만, 끝까지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고 이정은은 설명했다.

"대회 때마다 16, 17, 18번홀은 늘 긴장하고 친다. 아무리 타수 차가 나도 까딱하면 뒤집히기 때문이다. 오늘 15번홀에서 버디를 잡고 3타차가 됐지만, 긴장을 풀지 않았다"

이정은이 요즘 가장 자주 받는 질문은 "어떤 타이틀이 가장 욕심나나"와 "미국 진출 계획이 있느냐" 등 2개다.

이정은은 "작년에 신인왕을 타려고 너무 애썼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고 내 스윙을 못 했다. 타이틀에 얽매이면 내 경기를 못 하더라. 타이틀 생각은 머릿속에서 지우고 오로지 대회 때 우승 한 가지만 목표로 삼는다"고 말했다.

미국 진출은 조금 마음이 변하는 중이다.

하반신을 못 쓰는 아버지에 대한 남다른 효심으로 유명한 이정은은 "부모님과 헤어져서 지낼 수도, 같이 미국에 가기도 곤란한 처지인 데다 두려움도 없지 않아 미국 진출은 생각도 않았다"면서도 "이번에 박성현, 장하나, 최나연 선배가 두려워하지 말라고 해서 10%쯤 미국 진출 생각이 생겼다"고 소개했다.

전날 18홀 최소타 신기록을 세운 비결을 묻자 이정은은 "마지막 홀 버디 퍼트를 할 때도 기록이란 걸 몰랐다. 한마디로 정신없이 쳤다. 어떻게 그렇게 쳤나 싶다. 내 인생에 다시 못할 일인 것 같다"고 말했다.

kho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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