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I 5천억대 분식회계 혐의 뒤엔…'사업진행률의 마법' 의심
대형 프로젝트 작업 진행률 높여 매출 당겨 재무제표에 반영 의혹
檢 "선지급금 지급, 전산 조작 동원" vs KAI "성과 부풀리기 없다"
(서울=연합뉴스) 차대운 기자 = 하성용 전 한국항공우주산업(KAI) 대표가 5천억원대 분식회계를 주도한 혐의 등으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가운데 검찰이 KAI에서 대규모 분식회계가 이뤄졌다고 판단한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22일 검찰에 따르면 KAI는 회계기준을 어기고 대형 수주 프로젝트의 진행률을 인위적으로 조정해 회사의 양적 성장을 보여주는 핵심 지표인 매출액을 재무제표에 선반영한 의혹을 받는다.
군수 산업, 조선업, 건설업 등 이른바 '수주 산업' 기업들은 대형 프로젝트를 발주 받으면 사업진행률에 따라 매년 매출액과 이익을 재무제표에 반영하는 방식을 취한다.
전투기와 헬기 등 도입 사업은 발주 계약부터 최종 제품 인도가 이뤄지기까지 통상 수년이 걸린다.
또 제품 제작 진행 단계를 계량해 평가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수주 산업 기업은 실제 프로젝트에 투입된 원가와 총 예정 원가의 비율로 공사 진행률을 따지는 이른바 '투입법'이라는 회계 기법을 채택한다.
가령 계약 기간 3년인 1천억원 규모 사업을 수주했고 총 예정 원가가 900억원, 이익이 100억원이라고 가정하면 첫해 제품 제작에 투입된 비용이 300억원인 경우 진행률은 33.3%로 계산된다. 그해 재무제표에는 총 계약액 1천억원의 33.3%인 333억원이 매출액으로 반영된다.
투입법을 회계기준에 적용하는 기업은 매출액이 실제 들어온 돈과 꼭 들어맞지 않는다. 수중에 들어오지 않은 매출액은 재무제표의 자산 항목에 미청구 채권 개념으로 기록된다. 못 받은 외상값에 가까운 개념이다.
검찰은 KAI가 진행률을 끌어올리려는 목적으로 하청 협력업체에 선지급금을 몰아주거나 출고되지 않은 원재료가 출고된 것처럼 전사적자원관리(ERP) 시스템을 조작하는 등의 수법을 동원한 것으로 의심한다.
검찰은 KAI 내부 관계자 등으로부터 하청 기업이 실제 부품을 제작할 단계에 들어가지 않았는데도 인위적으로 선지급금 형식으로 돈을 미리 건넸다는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또 이 과정에서 하 전 대표가 직접 진행률을 챙겨 인위적으로 목표를 맞추기 위해 집중적으로 선지급금이 집행됐다는 진술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또 검찰에 소환돼 수사를 받은 회계 실무자들은 경영진에게 "더 버티기 어렵다. 다른 부분도 탄로날 것 같다"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보내기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수사팀은 하 전 대표 등 당시 KAI 핵심 경영진이 연임 등을 목적으로 재임 중 업적을 부풀리기 위한 차원에서 분식회계를 주도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하 전 대표는 2014∼2017년 급여가 2억5천만원 가까이 올랐고 상여도 2억원 넘게 상승했다. 검찰은 그가 부풀려진 성과를 바탕으로 성과급을 받아 개인적 이익을 취했다고 보고 배임 혐의도 포함했다.
아울러 검찰은 허위 재무제표 공시, 이를 바탕으로 한 수천억원대 대출 및 기업어음(CP) 발행 등과 관련해서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법·주식회사의 외부감사법 위반 등의 혐의를 적용했다.
그러나 하 전 대표는 경리 전문가가 아니어서 분식회계 사실을 잘 몰랐다는 취지로 혐의를 강하게 부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KAI도 분식회계 의혹을 부인한 바 있다. KAI는 지난달 2일 입장문을 내고 "이라크 등 해외에서 거둔 이익을 먼저 반영하거나 경영 성과를 부풀린 바가 없다"고 밝혔다.
이처럼 분식회계 여부를 둘러싼 양측의 입장이 첨예하게 맞서는 가운데 법원이 영장심사에서 어떤 판단을 내릴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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