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교사 과녁에 세우고 '체험용 활' 쏜 갑질 교감

입력 2017-09-22 20:53
수정 2017-09-22 21:09
여교사 과녁에 세우고 '체험용 활' 쏜 갑질 교감

피해 교사 충격으로 정신과 치료…인권위에 진정



(인천=연합뉴스) 손현규 기자 = 인천의 한 공립초등학교에서 근무하는 교사 A(27·여)씨는 올해 6월 수업이 끝난 뒤 교실에서 남은 업무를 하다가 교내 메신저로 연락을 받았다.

교감 B씨의 호출이었다. 업무로 할 이야기가 있으니 잠깐 2층 교무실로 내려오라고 했다.

10분 뒤 A씨가 인사를 하며 교무실에 들어서자 교감은 다짜고짜 "000 선생님. 저기 과녁에 좀 가봐"라며 손짓했다.

교감의 손끝이 가리킨 캐비닛에는 올림픽 때나 TV로 본 양궁 과녁이 A4용지에 출력된 상태로 붙어 있었고, 그의 손에는 체험용 활시위와 화살이 들려있었다.

화살은 40㎝가량 길이로 대나무 재질이었으며 앞쪽에는 흡착 고무가 붙어 있었다. 얼마 전 5학년 학생들이 서울의 한 선사유적지로 수학여행을 갔을 때 사용하고 가져온 것이었다.

당황한 A씨는 화살이 날아올 과녁 앞에 서면 위험하다고 생각했지만, 상사인 교감의 요구를 거절하기 어려웠다.

과녁의 점수를 봐달라는 거로 생각하며 얼굴 높이인 과녁 옆쪽으로 다가서자 B씨는 "아니 그 과녁에 서 있어 보라고"라며 다그쳤다. "하하하" 교감은 크게 웃었다.

A씨도 최대한 당황한 모습을 감추려고 의식적으로 몇 차례 억지웃음을 보였고, 교감은 자신의 요구에 응하지 않는 A씨에게 "(화살이) 오면 피하면 되는데…. 야 거기 있다가 맞는다. 이거 아무 데나 막 튀어"라고 겁을 줬다.

어찌할 바를 몰라 우물쭈물하는 찰나. 교감의 손에서 떠난 화살은 A씨의 머리 옆을 지나 종이 과녁에 박혔다. 머리에서 불과 20㎝ 정도 떨어진 지점이었다.

흡착 고무가 종이 과녁에 달라붙으며 '퍽'하는 큰 소리가 났다. 이 황당한 모습은 당시 교무실에 함께 있던 교무부장 선생님과 교무 실무원이 지켜봤다.

심한 모욕감과 수치심을 느낀 A씨는 그날 이후 정신과 병원에서 급성 스트레스장애로 전치 4주 진단을 받았고, 당시 충격으로 속이 울렁거리고 구토하는 증세가 계속돼 최근까지도 치료를 받고 있다. 교사 승급을 위한 자격연수도 받을 수 없었다.



A씨는 22일 "당시 교감 선생님 앞에서는 어쩔 수 없이 웃으며 아무렇지 않은 척을 했지만, 교실로 올라와서 펑펑 울었다"며 "마치 사냥꾼이 도망치는 동물을 보고 웃는 느낌이 들었다"고 울먹였다.

그는 "이후 심리적으로 불안해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주변을 계속 두리번거리는 버릇이 생겼다"며 "퇴근하고 혼자 사는 집에 가 극단적인 생각을 한 적도 있다"고 토로했다.

A씨는 평소 B씨가 인격을 모독하고 교사의 전문성을 무시하는 막말도 자주 했다고 주장했다.

B씨는 A씨의 주장이 전혀 사실과 다르다며 교무실에서 여교사를 과녁에 세워두고 활을 쏜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그는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당일 교사 성과상여금과 관련한 공문을 전달하기 위해 해당 교사를 교무실로 부른 것은 맞다"고 말했다.

그러나 "활은 2학기 때 진행할 아이들 전래놀이 활동에 쓰려고 갖고 온 것"이라며 "안전성을 시험하기 위해 혼자 있을 때 교무실에서 쏜 적은 있지만, 누군가를 세워 놓고 쏜 적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 이들이 교무실에 함께 있을 당시 나눈 대화 녹취에는 과녁 앞에 서보라고 이야기하는 B씨의 음성이 모두 담겼다. 또 실제로 화살이 과녁에 박혀 '퍽'하는 큰 소음도 녹음됐다.

변호사를 선임한 A씨는 B씨에 대해 인격권 침해 등으로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했다. 그는 B씨의 공개 사과뿐 아니라 인천시교육청의 철저한 조사 후 징계 등을 요구했다. 인권위는 조사에 착수해 B씨 측에 해명 자료를 요구한 상태다.

A씨는 "B씨는 교감과 평교사라는 상하관계를 이용해 교육의 현장인 학교에서 인권을 침해하는 갑질을 했다"며 "동료 교사이자 동등한 인격체가 아닌 마음 내키는 대로 해도 되는 대상으로 여긴 것"이라고 말했다.

s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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