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손님 발길 뚝 끊겨"…강진에 한숨만 쌓이는 멕시코 한인들
한인타운 일부 식당·사무실 폐쇄로 어려움…식당업주 "수리 언제 끝날지 난감"
일부 교민 주거지 출입금지로 불편…대사관·한인사회 인도적 지원 추진
(멕시코시티=연합뉴스) 국기헌 특파원 = 32년 만의 최악인 규모 7.1의 강진이 발생한 지 사흘째인 21일(현지시간) 멕시코의 수도 멕시코시티는 점차 평온을 되찾는 모습이었다.
일부 건물 붕괴현장에서는 구조대원들과 자원봉사자들이 한 사람이라도 소중한 생명을 구하기 위해 사투를 벌이고 있지만 레포르마와 차풀테펙 등 시내 중심대로는 쉴새 없이 움직이는 차량으로 가득했다.
레포르마 대로 인근 공원 벤치에는 시민들이 삼삼오오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독립기념탑 밑에서는 일부 시민이 앉아 담소를 나누거나 사진을 찍기도 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여러 건물의 안전 진단 등을 이유로 상당수가 재택근무를 했지만 이날 들어서는 대부분 정상 출근을 했다.
피해가 경미한 것으로 파악된 멕시코 진출 한국기업과 현지 공장도 상황은 비슷했다.
한국기업 현지 법인장 이 모(45) 씨는 "어제는 상황에 따라 재택근무를 했지만, 오늘은 현지 직원들이 대부분 출근했다"면서 "디렉터들과 회사 차원에서 강진 피해를 당한 사람들을 어떻게 도와줘야 할지를 논의했다"고 말했다.
강진으로 인해 붕괴 위험이 큰 건물에 입주한 일부 가게를 제외한 대부분의 가게나 식당 등도 문을 열고 정상 영업에 나섰다.
그러나 균열이 심하고 붕괴 위험이 있는 건물마다 경찰이 곳곳에 쳐놓은 '출입금지' 줄은 강진 여파가 여전히 진행 중임을 실감케 했다.
멕시코시티 등 지진 피해 지역에 있는 학교는 아직도 정밀 안전 진단을 위해 휴교령이 내려진 상태다.
독립기념탑 인근에 있는 한인타운인 소나로사 거리는 평소보다 한산하면서도 조용했다.
소나로사 지역에 있는 한인 식당과 가게, 센트로 지역에 있는 한인 상가 대부분이 상대적으로 큰 피해를 보지는 않았지만 긴장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특히 강진으로 건물이 심하게 파손되는 바람에 일부 한식당은 가게 문을 열지 못하고 있다.
파손 정도가 심한 건물에서 식당을 운영 중인 조 모 씨는 "일단 기술자가 나와서 건물 점검을 한 결과, 문제는 없다고 하지만 천장 등 내부 수리를 하면 얼마나 걸릴지 살펴봐야 한다"면서 "예약 손님도 많은데 난감하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아파트 건물에 입주한 일부 한국식당은 건물 파손이 적어 영업하고 있지만, 가스 공급이 끊기면서 이동식 가스버너를 활용해 음식을 준비하는 등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한인 상가가 밀집된 센트로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신 모 씨는 "강진 피해는 없지만, 손님 발길이 뚝 끊겼다"면서 "가뜩이나 경기가 안 좋은데 당분간 이런 상황이 계속될 것 같다"고 걱정했다.
신 씨는 "아들이 아파트 19층에 거주하는데 이번에 강진 충격이 커 손주들과 함께 단독 주택인 우리 집에 와 있다"면서 "20년 넘게 멕시코에서 살았지만 이런 지진 공포는 처음이었다"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일부 교민은 거주하던 건물과 임대 사무실 건물의 파손이 심각해 출입이 통제되면서 큰 불편을 겪고 있다.
한 교민은 "어제 신변에 문제가 생겨도 내가 책임지겠다는 각서를 쓰고 집에 들어가 여권과 귀중품을 챙겨 나왔다"며 "급한 김에 지인 집에 머물고 있지만 언제까지 신세를 질 수 없어 걱정이다"고 말했다.
멕시코에 거주하는 한인사회도 강진 아픔 나누기 행렬에 동참하기로 했다.
주멕시코 한국대사관은 한국기업, 지상사협의회, 한인회, 평통 지역협의회, 옥타 등과 함께 인도적 차원에서 재난 지원을 추진하기로 했다.
전비호 대사는 "이번 재난 지원은 각 단체와 기업이 자발적이며 자체적으로 추진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대사관은 관련 기업이나 기관과 긴밀히 협의해 재난 지원 채널을 가동하는 등 총괄 조정하는 역할을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대사관은 한국 정부와 비정부단체(NGO) 등에도 지원을 적극적으로 건의할 방침이다.
현지인들은 '힘내라 멕시코'(fuerza mexico), '연대'(solidaridad) 해시태그가 달린 소셜미디어 동영상 등을 통해 자원봉사에 나선 서로를 격려하는 한편 재난 극복에 동참할 것을 독려하고 있다.
시민 카를로스(27) 씨는 "우리의 어려움을 외면하지 않는 국제사회의 손길에 깊은 감사를 표한다. 연이은 지진에 온 나라가 슬픔에 빠졌지만, 연대를 통해 함께 이겨냅시다"라며 미소를 지었다.
penpia21@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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