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1세대 재벌 총수' 김준기, 48년만에 불명예 퇴진

입력 2017-09-21 15:39
마지막 '1세대 재벌 총수' 김준기, 48년만에 불명예 퇴진

김진만 전 국회부의장 장남…대학 재학 중 창업

IMF 직후 유동성 위기…그룹명 변경 등 재기 시도 중 사임

(서울=연합뉴스) 이승관 기자 = 여비서 성추행 혐의로 피소돼 21일 전격 사임한 동부그룹 김준기(73) 회장은 국내 주요 재벌그룹 총수 가운데 사실상 마지막 1세대로 꼽힌다.

두산그룹 박정원 회장 등 이미 창업 4세대까지 등장한 재계에서 '어른' 역할을 해왔으나 개인 문제로 50년 가까이 이끌어온 그룹을 떠나는 불명예를 안게 됐다.

김 전 회장은 1944년 강원도 동해에서 유력 정치인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부친은 제3대 민의원부터 무려 7선을 지내고 공화당 원내총무, 국회부의장, 헌정회장 등을 역임한 김진만 전 국회부의장이다.

경기고를 졸업하고 고려대 경제학과 재학 중이던 1969년 미륭건설을 창업해 건설업에 뛰어들었으며, 1970년대 중동 건설경기 붐을 바탕으로 사업을 키워 10년만에 30대 그룹에 진입했다.

특히 1980년대에는 한국자동차보험, 일신제강, 울산석유화학 등을 잇따라 인수해 그룹에 편입시키는 등 '탄탄대로'를 걸었다.

그러나 외환위기 이후 유동성 차질로 주력 계열사들을 매각해야 했다. 2000년 재계 순위 15위였던 동부그룹은 지난해 기준 30대 그룹에서 탈락했다.

2000년 동부건설의 자사주 헐값 매입 사건, 2015년 동부증권 자금 유용 논란 등 여러차례 고비를 겪기도 했으나 최근에는 제조업과 동부화재의 실적이 나아지면서 재기의 신호탄을 올렸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특히 올들어 그룹 정체성을 재정립하고 내부 분위기를 쇄신하기 위해 그룹명을 바꾸는 방안을 추진하기도 했지만 그 성과를 보기도 전에 성추행 파문에 휩쓸려 자리에서 물러나게 됐다.

창업주인 김 전 회장이 물러난 동부그룹은 일단 이근영 전 금융감독원장이 회장으로 선임되면서 '전문경영인 체제'를 선언했다.

실제로 그룹은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이 회장을 중심으로 계열사별로 전문경영인에 의한 자율 책임경영을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동부제철 부장을 시작으로 동부팜한농 부장을 거쳐 동부금융연구소 상무를 맡고 있는 아들 김남호 상무가 계열사 지분을 상당부분 보유하고 있어 결국 그룹 경영권 승계 가능성이 크다는 게 재계의 대체적인 관측이다.

최근 건강이 좋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 김 전 회장은 현재 신병 치료차 미국에 체류중이다.



humane@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