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신화, 다문화 상징" 다문화 유공 대통령표창 차윤경 교수
다문화교육학회 창립 주도·정책수립 기여…"차별금지법 제정해야"
(원주=연합뉴스) 이희용 기자 = "현장에서 다문화가족의 정착과 사회통합을 위해 애쓰시는 많은 분을 제치고 학계에 몸담고 있는 제가 가장 빛나는 상을 받게 돼 송구스럽습니다. 학계 전체를 대신해 누리는 영예라고 생각하고 앞으로 더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21일 오후 강원도 원주시 한솔오크밸리에서 열린 '제11회 전국 다문화가족 네트워크대회'의 '다문화가족 사회통합 유공자 포상' 순서에서 대통령 표창을 받는 차윤경(62) 한양대 교육학과 교수는 기쁨에 찬 웃음 대신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수상 소감을 털어놓았다.
차 교수는 결혼이주여성이 급격히 늘어나던 2000년대 초반부터 다문화가정에 관심을 쏟으며 다문화정책 도입과 다문화교육 시행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 뒤로도 지금까지 다문화교육의 틀을 만들고 다문화정책의 방향을 수립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특히 2008년 3월 한국다문화교육학회 창립을 주도하고 2011∼2015년 학회장을 지냈으며, 미국 다문화교육학회와 유럽 상호문화교육학회 등과의 국제 교류에도 앞장서 올 7월 세계다문화교육연대가 출범하는 데 중추적 역할을 맡았다. 그는 세계다문화교육연대 창립총회에서 차기 회장에도 뽑혀 2019년 6월부터 2년 임기를 시작한다.
"제 고향이 경남 함안의 산골입니다. 주변에는 가난 때문에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이 많았죠. 제 또래 가운데서도 초등학교만 졸업한 사례가 수두룩했고요. 그때부터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 절실하게 깨닫고 교육학을 전공했고 나중에도 소외계층의 교육에 관심을 쏟았죠."
차 교수는 서울대와 서울대 대학원 교육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사회학석사와 철학박사 학위를 받고 1989년 한양대 교육학과 교수로 부임했다. 어린 시절의 환경은 그를 교육학으로 이끌었고 미국에서의 경험은 교육학의 여러 분야 가운데서도 다문화교육학에 매달리게 만들었다.
"제가 다닌 대학이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근교에 있는데, 다문화국가인 미국 중에서도 백인 비율이 절반에도 못 미치는 대표적인 다문화도시죠. 인종의 전시장이라고 불릴 정도로 다양한 민족이 부대끼며 살아가는 데도 오랜 세월을 거쳐 만들어진 시스템이 작동해 큰 충돌이나 마찰 없이 지내더군요. 저도 이곳에서 소수민족으로 살아가면서 많은 점을 느꼈습니다."
귀국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결혼이주여성이 늘어나는 걸 보고 차 교수는 한국에서도 다문화교육학을 학문적으로 정립하고 다문화교육을 널리 보급해야 한다고 주창했다. 뜻 맞는 학자들과 의기투합해 학회를 만들고 학술지 발간과 세미나 개최 등에 앞장섰다.
국무총리실 산하 다문화가족정책위원회와 외국인정책위원회의 민간위원으로도 참여해 관련 정책 수립에 의견을 내고 정부 관계자와 현장 종사자들의 자문에 적극 응했다.
"다문화정책이 도입된 지 지난해 만 10년을 맞았고, 다문화교육학회가 창립된 지 올해로 10년째입니다. 우리는 그래도 미국이나 유럽 등의 시행착오에서 배울 수 있어 비교적 여건이 나은 편이죠. 전 국민의 다문화 인식을 개선하는 다문화 이해교육이나 세계시민교육을 정착시켜 사회 전반의 시스템을 하루빨리 바꿔야 합니다. 한민족이라는 틀에 갇혀 배타적 감정을 고집한다면 갈등이 깊어져 걷잡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됩니다."
그는 우리나라 국민이 단일민족이라는 정체성을 강하게 인식하고 있지만 그 뿌리라고 할 수 있는 단군신화야말로 우리 민족이 다문화로 형성됐음을 말해준다고 역설한다. 천제(天帝) 환인의 아들 환웅과 곰에서 사람으로 변한 웅녀가 결혼해 민족의 시조 단군을 낳았다는 이야기가 하늘을 숭배하는 부족과 곰을 숭상하는 부족의 결합을 상징한다는 것이다.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는 고조선의 건국이념 '홍익인간'(弘益人間)도 오늘날 지구촌 시대에 딱 맞아떨어지는 가치관입니다. 인권, 개인성, 사회정의, 민주주의 등 현대 사회의 보편적인 핵심 가치들을 담아내고 동화주의나 문화상대주의 등 반다문화적 요소들을 배제하는 다문화정책과 다문화교육이 절실합니다."
차 교수는 지난 5월 새로 출범한 문재인 정부에도 당부의 말을 쏟아냈다.
"다문화가정 자녀를 배려한다고는 하면서 이들을 남들과 구분짓거나 시혜의 대상으로 여기는 것은 낙인 효과와 소외감을 불러일으킬 뿐만 아니라 역차별 논란을 낳아 반다문화 정서를 부추길 우려가 큽니다. 지금까지의 외국인정책이나 다문화정책의 틀을 넘어 우리 사회의 제도와 관행의 틀을 다시 짤 시점이지요. 기존의 재한외국인처우기본법이나 다문화가족지원법 말고 인권법이나 차별금지법을 제정해 소수집단의 역량을 강화하고 사회통합을 촉진해야 합니다. 또 다문화교육지원법을 만들어 사회 전반의 다문화 수용성을 높이려는 노력이 시급합니다."
heey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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