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에 '명품' AK-47 자동소총 개발 칼라시니코프 동상 제막

입력 2017-09-20 11:47
모스크바에 '명품' AK-47 자동소총 개발 칼라시니코프 동상 제막

1947년 첫 완성품 제작…70여 년 동안 2억 정 이상 생산 유통

'죽음의 제작자,' '조국 수호 1등 공신' 등 다양한 평가

(서울=연합뉴스) 김선한 기자 = "세계 곳곳에서 죽음을 가져온 장본인," " 무슨 소리? 조국 수호의 1등 공헌자."

지난 71년 동안 2억 정 이상이 생산돼 '명품'으로 평가받는 AK-47 자동소총의 개발자 미하일 T 칼라시니코프를 둘러싸고 상반되는 평가가 19일(현지시간) 다시 한 번 쏟아졌다.

가디언, 러시아 라디오 등 외신에 따르면 러시아 정부와 국영 방산업체 로스텍은 19일(현지시간) 모스크바 중심부인 '가든 링 로드'에서 블라디미르 메딘스키 문화부 장관 등이 참석한 가운데 칼라시니코프 기념 동상을 공동 제막했다.

10m 높이의 이 동상은 러시아 문호 알렉산드르 푸시킨 동상이 들어선 곳 인근에 들어섰다.

메딘스키 장관은 "이 동상은 러시아의 문화 브랜드"라고 주장했다. 또 제막식을 집전한 러시아 정교회 콘스탄틴 신부는 "칼라시니코프는 조국 수호를 위해 이 총을 창조한 인물"이라고 칭송했다.





또 러시아 정교회의 전직 고위 사제도 페이스북을 통해 "AK-47 자동소총은 신성한 무기"라고 주장했다. 반면 제막식 직전 한 남성은 "이 소총을 만든 사람은 죽음의 제작자"라는 문구가 적힌 팻말을 펼쳐 들다 경찰에 연행돼 대조를 이뤘다.

남부 시베리아 알타이 공화국의 빈농 출신으로 2013년 9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칼라시니코프가 '자동소총의 지존'으로 평가받는 AK-47 개발에 나서게 된 것은 2차 대전 참전 경험에서다.

철도 기술자로 일하던 19살 때인 1938년 입대, 전차부대에서 근무하다 1941년 부상으로 병원신세를 지면서 자동소총으로 무장한 독일군에 속수무책 당하던 소련군 병사의 처지에 안타까움을 느껴 개인 화기 연구에 나서게 됐다고 한다.



그는 1941년에 첫 견본을 내놓는 데 이어 이듬해 두 번째 견본품도 개발하면서 당시 소련 내 최대 무기공장인 툴라 조병창에 입사했다. 이후 여러 차례의 성능개량작업과 시험을 거쳐 1947년 마침내 완성품을 내놓았다. AK-47의 47은 완성품 개발연도를 뜻했다.



AK-47은 나사 연결부가 거의 없어 분해와 조립이 간단한 데다 노리쇠도 단순했다. 물에 젖거나 모래 등 이물질이 들어가도 고장이 거의 나지 않았다. 전자동 발사가 가능해 더구나 제작비용도 저렴했다. 칼라시니코프는 "AK-47은 눈 한쪽과 집게손가락 하나만 있으면 누구나 쏠 수 있다"며 성능에 자부심을 가졌다.

소련 군 당국은 AK-47을 공식 채택했고 1949년부터 군에 보급하기 시작해 1950년대 중반에는 전군이 이를 갖췄다.

이와 함께 가성비가 뛰어난 AK-47는 아프리카 밀림에서부터 남미 혁명 전장, 아프가니스탄의 고산지대에 이르기까지 세계 곳곳에 보급돼 성능이 입증됐다.

유혈 분쟁에서 교전 상대 모두가 똑같이 AK-47 자동소총을 사용하는 진풍경도 비일비재했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으면서, AK-47은 증오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특히 중국이 무계약으로 '짝퉁'을 양산, 전 세계에 유통하는 등 40개국이 넘는 나라들이 이 소총을 제작 판매한 것도 유명세를 키우는 데 일조했다.

칼라시니코프는 생전 "내가 개발한 AK-47 소총이 나쁜 사람의 손에 들어가 많은 불행을 초래한 것이 안타깝다"고 고충을 털어놓기도 했다.

sh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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