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무왕·선화공주 무덤 맞을까…익산 쌍릉 100년만에 발굴

입력 2017-09-19 14:45
백제 무왕·선화공주 무덤 맞을까…익산 쌍릉 100년만에 발굴

'무왕 묘' 통설 논란 속 피장자·축조방법·석실규모 등 규명

(익산=연합뉴스) 최영수 기자 = 전북 익산에 나란히 조성된 백제 고분인 쌍릉(雙陵)에는 과연 누가 묻혔을까. 예로부터 전해오는 이야기처럼 향가 '서동요'에 등장하는 백제 무왕과 선화공주가 무덤의 주인일까.

피장자를 놓고 학계에서 의견이 분분한 익산 쌍릉(사적 제87호)의 실체를 밝히기 위한 조사가 첫 발굴 100년만에 다시 이뤄진다.

익산시는 21일 오후 대왕릉 앞에서 안전한 발굴을 기원하는 고유제를 지낸 후 원광대 마한백제문화연구소와 함께 25일부터 대왕릉 정밀발굴조사에 착수한다.

대왕릉은 지름 30m, 높이 5m의 원형 봉토분으로 백제 30대 무왕 묘로 여겨왔다.

대왕릉은 일제감점기인 1917년 일본인 야쓰이 세이이치에 의해 발굴된 횡혈식 석실규모와 금송제 목관에 비춰 충남 부여군 능산리 고분군 왕릉에 비교되는 무덤으로 인정돼왔다.

쌍릉 피장자에 관한 통설은 부여에서 익산으로 천도를 추진한 무왕(재위 600∼641)과 그의 부인인 선화공주가 묻혀 있다는 것이다. 고려사, 세종지리지, 동국여지승람에는 쌍릉이 무강왕(武康王)과 비(妃)의 무덤이라고 기록돼 있다. 쌍릉 중 대왕묘는 무왕, 소왕묘는 선화공주의 무덤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국립전주박물관은 2016년 1월 '익산쌍릉 일제강점기 자료조사보고서'에 대왕릉에서 출토된 치아가 여성의 것이고, 토기도 신라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에 일각에서 대왕릉의 피장자가 무왕이 아닌 무왕의 아내인 신라 선화공주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번 발굴조사는 쌍릉에 대한 체계적인 발굴을 통해 정확한 피장자 등을 밝히기 위한 1단계 사업이다.

익산시,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마한백제문화연구소는 지하물리탐사를 비롯한 과학적인 조사를 한 후 정밀조사에 들어간다.

특히 일제강점기 때 대왕릉 모습을 지형 복원하고 발굴고분 정밀실측 등을 통해 봉분 축조방법과 석실규모 및 형태를 밝히는데 주안점을 둘 예정이다.

시 역사문화재과 관계자는 "100년만의 발굴을 통해 새로운 정보가 밝혀질 것으로 기대한다"며 쌍릉과 백제왕도 익산은 물론 고대문화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이바지할 것으로 전망했다.



k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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