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제 빨치산 토벌작전 호국영웅 66년여 만에 '귀환'

입력 2017-09-19 09:36
수정 2017-09-19 21:07
인제 빨치산 토벌작전 호국영웅 66년여 만에 '귀환'

故한진홍 일병 신원확인서·유품 가족에 전달…결사유격대원 신원 첫 확인



(서울=연합뉴스) 김귀근 기자 = 강원도 인제에서 북한 빨치산을 토벌하다가 전사한 '호국영웅'의 유해가 전사한지 66년여 만에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은 19일 6·25전쟁에 참전했다가 전사한 고(故) 한진홍 일병(당시 21세)의 아들 한윤식(68·경남 합천군)씨의 자택 인근 마을회관을 방문해 전사자 신원확인 통지서와 국방부장관 위로패, 유해수습시 관을 덮었던 태극기, 발굴 유품 등을 전달하는 '호국영웅 귀환행사'를 했다고 밝혔다.

육군직할 결사유격대 13연대 소속이었던 한 일병은 1951년 2월 강원도 인제군 설악산 저항령 일대에서 북한 빨치산을 공격하던 중 적의 총탄에 전사했다.

유해발굴단 창설 이후 결사유격대로 참전한 전사자의 신원이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또 지난 2000년 유해 발굴의 첫 삽을 뜬 이후 122번째로 전사자 신원이 확인됐다.

1930년 경북 경주시 산내면 의곡리에서 2남 4녀 중 장남으로 태어난 한 일병은 1950년 3월 결혼 후 아들을 낳아 행복하게 살다가 이듬해 1월께 21세의 젊은 나이로 경주 본적지 마을에서 친구들과 함께 징집되어 육군 직할부대 결사유격대에 입대했다.

육군 정보학교 입소 후 결사유격대 13연대로 배치된 고인은 1951년 2월 초 북한군 후방지역으로 침투하기 위해 부산에서 상륙 작전용 함정을 이용해 강원 삼척 묵호항에 도착했다. 결사유격대 대원들은 최종 목표인 강원도 어은산을 향해 침투하던 중 북한군이 배치된 것으로 추정된 정선군과 양양군을 피해 중간지역인 인제군 쪽으로 들어갔다.

고인은 같은 해 2월 15일 인제군 설악산 저항령 일대에서 주로 야간에 작전을 하면서 북한 빨치산을 공격하던 중 적의 총탄에 전사했다. 유해는 지난해 11월 8일 강원도 인제군 북면 용대리 저항령에서 수습됐다.

만년필, 안경, 구두 주걱이 달린 열쇠고리, 단추, 탄피 등의 유품도 함께 발굴됐다.



고인의 유해 발굴은 한 등산객이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이 단서가 됐다.

유해발굴단 조사과에서 근무하는 서일권(38) 탐사관은 지난해 10월 탐사예정 지역인 설악산 저항령 일대에 대해 6·25전쟁 참전용사들의 증언을 수집하고 있었다. 그는 10월 중순 설악산에 눈이 내린다는 예보를 청취한 후 습관적으로 저항령 날씨와 지형을 검색했다.

그러던 중 한 등산객이 자신의 블로그에 저항령 정상부 너덜지대에서 지표에 노출된 유해를 목격했다는 글을 올린 것을 읽었다. 서 탐사관은 블로그에 댓글을 달아 목격자의 연락처를 확보한 끝에 유해의 구체적인 위치와 유해 노출 상태 등을 확인했다.

유해발굴단은 곧바로 현장탐사에 착수해 암석 위에 노출된 머리뼈를 확인하고 암석틈 사이에서 팔뼈와 다리뼈 등을 수습했다. 유해를 발굴하는 과정에서 목격자 증언이 얼마나 결정적 역할을 하는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고인의 신원은 아들 한씨가 2014년 11월 경남 합천군 보건소에 찾아가 유전자 시료를 채취해 뒀기 때문에 가능했다.

한씨는 "할아버지께서 생전에 아버지를 찾기 위해 육군본부 등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셨던 것으로 기억한다"며 "어머니는 홀로 저를 어렵게 키우시다가 1973년 암으로 돌아가셨다"고 말했다.

그는 "이제라도 아버님의 유해를 찾아서 만나 뵐 수 있어서 너무나 감격스럽고, 국방부 관계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소감을 피력했다.

신원이 확인된 한 일병의 유해는 유가족들과 협의를 거쳐 국립현충원에 안장될 예정이다.

유해발굴감식단장 이학기 대령은 "이름 모를 산야에 묻혀계신 전사자 분들이 아직도 12만3천여명"이라며 "조국을 위해 헌신하신 영웅들이 하루빨리 가족의 품에 안길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three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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