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양은 상처이자 축복" 모국찾은 입양인 멘토 도미닉 팽본 씨

입력 2017-09-19 07:15
"입양은 상처이자 축복" 모국찾은 입양인 멘토 도미닉 팽본 씨

10살때 美 입양돼 디자이너로 성공…"입양 반대 불구 대안 없어"

"도피는 해결책 아냐…과거 바꿀 수 없지만 미래는 하기 나름"

(서울=연합뉴스) 강성철 기자 = "친부모와 생이별하는 해외 입양제도에 대해 반대 목소리가 크다지만 뚜렷한 대안도 없다고 들었습니다. 양육할 수 없는 형편에 놓인 가정의 아이들에게 입양은 축복이 될 수도 있습니다. 저 역시 그런 기회를 통해 많을 것을 누렸죠."

국제한국입양인봉사회의 '국외 입양인 모국방문 캠프'에 멘토로 참여한 도미닉 팽본(한국 이름 정승헌·65) 씨는 19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대부분의 입양인이 좋은 환경에서 자라는 만큼 입양에는 긍정적 측면도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한국은 2013년 가입한 헤이그국제아동입양협약에 따라 입양인에게 입양정보를 공개해야 할 의무가 생겼기에 입양 보낸 사실을 마냥 감추고 살수가 없다. 입양인이 정보를 통해 찾아올 수 있다는 것을 친부모는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부에 대해서도 "입양을 보내는 데 그치지 말고 현지에서 당당한 한민족으로 살 수 있도록 사후관리를 철저히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충북 괴산에서 태어난 그는 미군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혼혈이라는 이유로 어려서부터 차별을 받았고 10살 때 친어머니로부터 "미국에 가서 살지 않겠느냐"고 권유를 받아 그해 미국 미시간주의 양부모에게 입양됐다.

그는 "'미국놈'이라고 놀리는 소리가 너무 듣기 싫어 이럴 바에는 미국에서 사는 것이 좋겠다 싶어서 두말하지 않고 결정했는데 미국에 가서도 혼혈이라고 차별받았다"며 "결국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도피해서는 해결되지 않고 그냥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행복해질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고 털어놨다.

양부모는 11명의 자식을 낳은 후 팽본을 입양했다.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성장한 그는 "부모와 형제의 따듯한 보살핌 덕분에 가정에서는 아무 구김 없이 성장했다"며 "어려서부터 이웃집 정원 가꾸는 아르바이트를 하는 등 집안에 도움이 되는 존재가 되려고 늘 노력했기에 형제들과의 우애도 좋았다"고 말했다.

미술에 소질을 보인 그는 시카고 미술아카데미대학에서 그래픽디자인을 전공했다. 대학 시절 디자인회사에서 아르바이트할 정도로 능력을 발휘했고 한때는 아버지보다 더 많은 돈을 벌어서 집안 살림을 돕기도 했다.

대학 4년 내내 장학금을 받았던 팽본 씨는 대기업 디자이너로 취직해 3개월 만에 13명을 거느린 팀장으로 승진했지만 사표를 내고 1979년 팽본디자인이라는 회사를 차렸다. 이후 지금까지 회사를 운영하며 현역 인생을 살고 있다.

미국으로 입양 갈 때 경제적으로 성공해서 어머니를 모시러 오겠다고 다짐했던 그는 21년이 지난 1983년 어느 정도 자리 잡았다 싶어 모국을 찾았으나 생모는 5년 전 뇌출혈로 세상을 떠난 후였다. 그는 어머니가 한국인 남자와 재혼해 낳은 3남매의 형제 및 조카들과 그때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왕래하고 있고 조카들의 미국 유학을 돕기도 했다.

어머니에 대한 원망이나 자신이 늦게 찾은 것에 대한 후회가 없느냐는 질문에 그는 잠시 숨을 고르더니 "과거는 과거일 뿐 거기에 얽매여 자책하거나 슬퍼하며 살고 싶지 않다"며 "어머니는 안 계시지만 한국에 많은 형제와 조카가 있다는 사실에 더 감사해 한다"고 미소를 지었다.

그는 포드자동차 창립 75주년 행사의 총괄 디자인을 맡았고 대우자동차의 미국 진출 초기에 마케팅을 대행했을 정도로 소문난 실력파다. 디트로이트 시에 자신이 디자인한 스카프, 넥타이, 셔츠, 가방 등을 파는 전문점을 운영하고 있으며 2015년에는 평창동계올림픽조직위원회가 초청한 14명의 디자이너에 뽑혀 올림픽 홍보 디자인 공모전에 참여하기도 했다.

한인 입양인 출신의 미시간주 상원의원인 훈영 합굿의 부인 정선화 씨는 팽본 씨의 조카이기도 하다.

지난 16일 60여 명의 '국외 입양인 모국방문 캠프' 참가자들에게 '역경을 헤쳐나가는 힘'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했던 그는 "친부모로부터 버려졌다는 것은 극복하기 어려운 상처인데 이를 치유해보려고 친가족을 찾다가 또 다른 상처를 받는 경우가 많다"며 "과거는 바꿀 수 없지만 미래는 하기 나름이라는 자신감과 긍정의 힘을 입양 후배들에게 강조했다"고 소개했다.



wakaru@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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