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부패수사기관]② 대만 염정서·호주 반부패독립위
법조비리로 대만 염정서 출범 6년째 취약한 독립성 탓 예속 한계
호주 ICAC는 주정부 소속…정치권 '눈엣가시' 활동범위 축소 판결 악재
(시드니·상하이·타이베이=연합뉴스) 김기성 정주호 특파원·류정엽 통신원 = 도시국가로서 일찌감치 공직자 청렴에 눈떴던 싱가포르와 홍콩과는 달리 대만, 호주는 대규모 공직자 비리가 발생한 후에야 뒤늦게 부패전담기구를 발족시켰다.
고위관료, 법조, 경찰의 비리 척결에 대한 사회여론을 등에 업고 출발한 이들 양국의 반부패 수사기관은 활발한 공직자 비리수사로 정치·사회 전반의 청렴문화를 확산시키는 기폭제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대만의 염정서(廉政署)는 아직 취약한 독립성으로 그 성가를 높이지 못하고 있고, 호주의 반부패독립위원회(ICAC)도 아직 지방정부 차원에 머물고 있다는 한계를 안고 있다.
◇ 대만 염정서 사법제도 혼란 우려해 축소출범…아직 "성과 미흡"
대만은 판·검사들이 연루된 대규모 법조비리 이후 2011년 고위공직자 부패 척결 기구인 염정서를 출범시켰다.
홍콩의 염정공서(廉政公署)를 본뜬 대만 염정서 출범은 마잉주(馬英九) 전 총통 시절인 2010년 7월에 불거진 대규모 법조비리가 계기가 됐다.
국민당 5선 입법위원 출신의 허즈후이(何智輝) 먀오리(苗栗)현장이 수뢰 혐의로 19년형을 선고받았다가 판·검사들에게 뇌물을 뿌리고 향응을 제공해 무죄 판결을 받은 사실이 적발된 것이다.
당시 사건으로 판사 3명, 검사 1명이 구속된 뒤 마 전 총통이 직접 염정서 설립을 발표했다.
대만도 검찰과는 별도의 부패 수사기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1987년 한때 반부패 드라이브의 일환으로 행정원장(총리) 직속의 반탐오국(反貪汚局)을 설립하려는 움직임이 있다가 군과 경찰의 반발로 중단됐다.
마 전 총통 역시 1993년 법무부장 재임 시절만 해도 홍콩과 싱가포르를 벤치마킹해 법무부 정풍사(政風司)를 염정국으로 격상시키려는 생각을 갖고 있었으나 총통이 된 후로는 염정서 설치에 대해 불필요하다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결국 법조비리가 터진 뒤 여론과 정치권의 압박에 못 이겨 지방선거와 총통선거를 앞두고 2011년 7월 공식 출범한 염정서는 '선거용'이라는 비아냥을 들었다.
특히 염정서가 법무부 산하에 설치돼 독립성 측면에서 취약하다는 지적도 받았다.
당시 대만 정부는 영미법 계통인 홍콩, 싱가포르와 달리 대륙법 계통인 대만에서 사법권을 가진 염정서를 총통이나 행정원장 산하로 할 경우 검사가 수사 주체인 대만의 사법제도를 혼란시킬 것을 우려했다.
법무부 조사국과의 옥상옥(屋上屋) 문제도 있었다. 법무부 조사국이 고위 공직자 비리를 포함한 거악(巨惡) 수사를 담당한다는 일반적 인식도 바꾸지 못했다.
현재 200여 명이 근무하는 염정서는 14명의 검사가 파견돼 있는 숙탐(肅貪)팀과 부정부패 정보의 수집 및 예방을 맡는 정풍(政風)팀, 법 제도 정비로 부패 예방을 담당하는 방탐(防貪)팀 등 4개 팀으로 구성돼 있다.
이중 염정서 검사들은 조사, 또는 수사된 사건을 보고받아 범죄 구성 여부를 최종 판단한 뒤 수사결과를 관할 지검에 넘겨 기소 여부를 결정한다.
아울러 염정서는 사회 명망가들로 구성된 염정심사위원회를 설립해 부패 사건의 오판, 은폐, 축소 여부 등을 감시토록 하고 있다.
염정서는 지난 1분기 54개 사건에 연루된 115명의 공무원 중 2명을 면직 처리했고, 2명에 대해 인사조정을 실시했다.
하지만 염정서는 출범 6년이 되도록 사실상 검찰에 예속된 기구로서 한계를 드러내며 아직 인상적인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도 받는다.
지난 3월 대만 자유시보의 설문 결과 응답자의 54%가 정부가 부패에 제대로 대응을 못하고 있다고 답했고 26%는 염정서 출범 전보다 부정부패가 늘어났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 주총리 낙마시킨 호주 NSW주 '반부패독립위원회'
호주에는 국가가 아닌 주정부 차원에서 만든 부패전담 수사기관이 있다.
2014년 4월 호주 최대 주인 뉴사우스웨일스(NSW)의 배리 오파렐 주총리가 3천 호주달러(250만원) 상당의 고가 와인을 선물로 받은 사실이 드러나 전격 사임했다.
오파렐 주총리는 반부패독립위원회(ICAC)의 수사에 부인으로 일관했으나 ICAC가 선물에 대한 자필 감사 편지를 입수, 증거로 내밀자 고개를 숙였다.
당시 메건 래섬 ICAC 위원장은 3개월 전 오파렐 주총리가 임명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ICAC는 1년 후 1989년 설립 이래 최대 위기를 맞았다. 현역 검찰 간부를 수사하다 법적 다툼까지 벌이게 됐는데, 연방대법원이 활동 범위를 크게 제한하는 판결을 내렸기 때문이다.
검찰 간부가 아들 여자친구의 교통사고를 조언하면서 가슴에 통증이 있는 것처럼 행동해 경찰의 음주측정을 피하도록 한 것을 ICAC는 관련법이나 관행상 공무 집행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며 부패 행위의 일종으로 간주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공무집행에 '악영향'을 준다는 것은 공무집행의 '청렴결백'(probity)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좁혀 해석해야 한다며 ICAC가 검사를 수사할 권한이 없다고 판결했다.
이후 정치권이 '눈엣가시'인 ICAC에 대한 수술에 나서 지난해 11월 위원장을 1명에서 3명(상근 1명·파트타임 2명)으로 늘리는 법안을 통과시키자, 래섬 위원장은 임기의 절반가량을 남기고 사임했다.
그는 위원장을 더 하려면 다시 지원해야 한다는 말에 재도전을 포기, ICAC 위원장으로는 처음 임기 5년을 채우지 못했다.
ICAC는 호주 최대도시 시드니를 포함하는 NSW주가 공공부문 부패에 대응하고 청렴도를 개선하고자 설치한 기관이다. 1980년대 후반 고위 관료, 사법부, 경찰 고위직 등의 부패가 심한 데 따른 사회적 산물로, 1988년 ICAC 관련법 제정에 이어 이듬해 공식 출범했다.
기본 업무는 ▲공공부문 부패행위를 인지ㆍ수사해 세상 밖으로 드러내고 ▲조언과 지원을 통해 부패 예방활동을 하며 ▲부패와 그 영향을 사회와 공공부문에 교육한다는 것이다.
관할 범위는 정부 부처와 장관, 의원, 사법부, 총독 등 주 내 입법과 사법, 행정부를 총망라한다. 공적인 기능을 수행하는 사람들도 포함된다. 다만, 경찰은 자체 관련 기구를 두고 있어 제외된다.
ICAC는 수사권을 갖고 있고 경찰로부터 감청정보를 받을 수도 있지만, 기소권은 없다. 기소하고자 할 경우 검찰총장에게 권고할 수 있다.
최근 한 해에 약 3천 건의 신고를 받지만, 사안이 중대해 청문회(public hearing)까지 가는 것은 채 1%도 안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ICAC는 주의회 관련 위원회에 활동 상황을 보고해야 하는 등 주의회의 감시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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