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자마자 벼랑에 몰린 로힝야족 신생아들

입력 2017-09-18 10:51
수정 2017-09-18 11:13
태어나자마자 벼랑에 몰린 로힝야족 신생아들

최근 15일새 400여명 태어나…육아·건강관리 어려워

(서울=연합뉴스) 이경욱 기자 = 미얀마 군(軍)과 로힝야 족(族) 반군의 유혈충돌을 피해 국경을 넘어 방글라데시로 피난한 미얀마 소수족 로힝야 난민 가운데에서 최근 태어난 갓난아이들이 마땅한 보호를 받지 못해 숨지는 등 비극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15일간 방글라데시와 미얀마 사이 국경에서는 무려 400여명의 어린이들이 태어났다.

라카인주(州)에서 횡행하고 있는 폭력과 방화, 총기 난사 등을 피해 로힝야 주민 40만명이 방글라데시로 떠밀려 들어갔다.

이들 가운데 80%는 남편과 아버지와 헤어진 여성 또는 어린이들이다.



피난길 여성들은 길거리에서 아무런 도움 없이 출산하고 있어 적절한 보호가 시급한 상황이라고 영국 일간 가디언이 17일(현지시간) 전했다.

미얀마 군 당국은 사태의 책임은 모두 로힝야족 반군들에게 있다고 비난했다.

유엔은 로힝야 사태를 '인도주의의 재앙'이라고 부르고 있다.

국제구호단체는 감당을 못하고 있다.

피난길 여성들은 계속 아이를 낳고 있다.

아무도 반겨주지 않는 상황에서 수라이야 술탄(25)은 엄마가 됐다.

긴 피난 행렬 속에 있던 술탄은 산기를 느꼈고 진통은 점점 잦았다.

방글라데시국경수비대(BGB)는 그녀를 보트에 옮겨 태웠다.

임시로 만든 천막 밑에서 술탄은 예쁜 딸 아예샤를 낳았다.

엄마와 딸은 모두 지치고 아팠다.

이들은 나야파라 난민캠프로 이송돼 치료를 받았다.

캠프 관리 모흐드 모미눌 하크는 술탄과 같은 상황에 처한 산모들을 여러차례 받았다면서 이들의 상황은 심각하다고 말했다.

하크는 "엄마와 갓난아이들을 돕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상황은 우리의 능력 밖에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출산 도중 숨진 산모들도 있다.

일부 산모는 갓 태어난 아기가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한 채 병으로 숨지는 것을 지켜봐야만 했다.

마숨 바두르(28)의 아들은 고열 증세에 시달리다 숨졌다.

그의 남편 아부 바크르(35)는 도움을 요청했지만 결국 아들은 목숨을 잃었다.

그는 아들을 편히 쉬게 할 장소를 찾지 못했다.



피난민을 수용할 임시 막사를 짓느라 빈터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근처 숲 속에 아들의 묘소를 만들어야만 했다.

아들은 태어난 지 3일 만에 세상을 떠났다.

방글라데시 민간의료 지원단체 '고노샤스타야 켄드라'(Gonoshasthaya Kendra) 대표 만수르 카디르 아흐메드는 음식과 물 부족에 시달리고 있는 산모들이 갓난아이들에게 젖을 제대로 물리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니세프(유엔아동기구·UNICEF) 책임자 앤서니 레이크는 "산모와 여자들, 그리고 어린이들을 보호하고 도움을 주는 일이 무엇보다도 시급하다"고 말했다.

유니세프는 방글라데시에서 어린이와 임산부를 대상으로 구호활동을 펼치려 하고 있지만 미얀마 측이 모든 구호팀의 활동을 차단하고 있다.

미얀마와 방글라데시 국경 상황이 갈수록 악화하고 있는 것과 관련, 국제사회는 미얀마의 실질적 지도자 아웅산 수치에 대해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수치는 주로 무슬림인 로힝야 소수민족을 대상으로 하는 이른바 '인종 청소'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

영국에서는 수치에게 영국의 대학과 도시들이 수여한 각종 상과 명예증을 회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파키스탄의 인권운동가 말랄라 유사프자이 등 역대 노벨상 수상자들도 수치에게 로힝야 사태 해결을 위해 나서라고 촉구했다.

kyung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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