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테랑 맏형·새내기 소방관' 끝까지 현장 지키다 순직 날벼락(종합)
내년이 정년·소방관 임용 8개월…"오래된 건축물 마지막까지 화재 진압"
(강릉=연합뉴스) 이재현 기자 = "오래된 건축물로 보존 가치가 높은 것으로 판단해 끝까지 현장을 지키며 화재 진압을 했는데…"
17일 강원 강릉에서 화재 진화 중 무너진 건물에 매몰돼 순직한 소방관 2명은 '석란정' 건물 기와가 무너지는 상황에서도 끝까지 화마와 싸운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고로 숨진 이영옥(59) 소방위와 이호현(27) 소방사는 이날 오전 4시 29분께 석란정 화재 현장에 출동해 잔불 정리 중 무너진 건물 더미에 매몰돼 숨졌다.
이들은 전날 오후 9시 45분께 강릉시 강문동 석란정에서 불이 났다는 신고를 받고 1차 출동했다.
불은 8분여 만에 진화됐으나 이날 오전 3시 51분 석란정에서 재발화됐다는 신고를 받고 2차 출동해 진화작업을 벌였다.
이 소방위와 이 소방사는 정자 건물 바닥에서 연기가 나자 건물 한가운데서 도구로 마룻바닥을 헤치는 등 잔불을 제거하다가 참변을 당했다.
당시 2차 출동에는 경포119소방센터 소속 이 소방위와 이 소방사 이외에도 인근 119안전센터 지원팀 등 모두 2개 팀 4명이 진화 작업을 벌였다.
센터 내에서 가장 맏형인 이 소방위는 화재 진압 경륜이 풍부한 베테랑으로서 새내기 소방관인 이 소방사와 늘 한 조를 이뤄 근무했다.
이날도 자신들의 관할 구역 내에서 벌어진 화재 현장을 끝까지 지키다 참변을 당했다.
1988년 2월 임용된 이 소방위는 퇴직을 불과 1년여 앞두고 있었고, 이 소방사는 임용된 지 불과 8개월밖에 안 돼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91세 노모를 모시고 있는 이 소방위는 아내(57)와 장성한 아들(36)을 두고 있고, 이 소방사는 부모와 여동생(27)을 둔 미혼으로 알려졌다.
특히 지난해 1월 임용된 이 소방사는 고교 졸업과 동시에 해병대에서 군 복무하다가 지난해 강원도립대 소방환경방재학과를 졸업하면서 소방과 인연을 맺었다.
동료 소방관들은 "화재 진압 경험이 많은 베테랑 이 소방위는 새내기 소방관인 이 소방사를 아들처럼 생각하며 같은 조로 근무했다"며 "활달한 성격의 이 소방사도 퇴직을 앞둔 이 소방위를 아버지처럼 따랐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날 참사가 난 석란정은 갑인생 동갑 계원 21명이 1956년 지은 목조 기와 정자로 높이는 10m, 면적은 40㎡다.
비지정 문화재로 강릉시에서 관리하고 있다.
스카이베이 경포 호텔이 시작되면서 건물 외벽에 금이 가 인근 주민들이 석란정 보강조치 후 건물 이전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소방 관계자는 "오래된 건축물은 보존 가치가 높을 것으로 판단해 적극적으로 화재 진압을 하다가 변을 당한 것 같다"며 "진흙과 나무로 지어진 목조 건물이 전날 화재로 물을 많이 머금은 상태에서 견디지 못하고 무너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 순직한 두 대원의 빈소는 강릉의료원 장례식장 1관 1호실과 2호실에 마련됐다. 3호실에는 합동분향소를 마련했다.
조종묵 소방청장과 이흥교 강원도 소방본부장은 사고 현장과 장례식장을 찾아 두 대원의 안타까운 죽음에 애도를 표했다.
두 사람의 영결식은 19일 오후 2시 강릉시청 대강당에서 강원도청 장(葬)으로 열린다.
고인은 영결식 후 국립대전현충원 소방관 묘역에 안장된다.
도 소방본부는 순직한 두 대원을 1계급 특진 추서하고 국가유공자 지정을 추진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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