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소외이웃 도와요" 28년째 명절 쌀 나누는 장애인시설

입력 2017-09-17 09:45
"우리도 소외이웃 도와요" 28년째 명절 쌀 나누는 장애인시설

'임마누엘의 집' 저소득 장애인·결손아동에 쌀 기부

지체장애 김경식 원장 "부자 아니라도 누구나 나눌 줄 알아야"



(서울=연합뉴스) 현혜란 기자 = "이번 추석 연휴가 얼마나 깁니까. 직장인에게는 달콤한 휴가겠지만, 생계가 어려운 노인이나 장애인은 막막하기 그지없어요. 따뜻한 밥 한 그릇이라도 든든하게 드셨으면 합니다."

서울 송파구 거여2동 장애인 생활시설 '임마누엘의 집'은 1989년부터 매년 명절을 앞두고 소외된 이웃에게 점심을 차려주고 20㎏들이 쌀 한 포대를 선물하는 '쌀 나눔 잔치'를 열어왔다.

올해도 어김없다. '임마누엘의 집'은 오는 26일 제40회 추석 맞이 사랑의 쌀 나눔 잔치를 연다. 저소득층 장애인을 초청해 밥을 대접하고 쌀을 전달할 계획이다.

특히 올해는 추석 연휴가 긴 만큼 '나눔 이벤트'를 하나 더 준비했다. 재정이 빠듯해 밥은 대접하지 못하더라도 잔치 다음 날인 27일 문정동의 한 공원에서 결손가정 아동과 중증 장애인 300명에게도 쌀을 한 포대씩 나눠주기로 했다.

'임마누엘의 집'은 몸을 의지할 곳이 없는 지체장애인 50여명이 함께 생활하는 곳이다. 평소 사회복지사와 자원봉사자 도움을 받아야 하는 이들이지만 잔칫날만큼은 팔을 걷어붙이고 다른 어려운 이웃에게 식사를 차려준다.



'임마누엘의 집' 원장 김경식(62) 임마누엘복지재단 이사장은 17일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재단이 경제적으로 아무리 힘들어도 명절 연휴에 쌀 한 포대씩 나누는 행사는 빼먹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눈물 섞인 밥은 먹어본 사람만 그 맛을 안다고 하지요. 내가 장애인이 되어보니까 힘들 때 밥까지 못 먹으면 얼마나 서러운지…. 그런 사람들에게 돈을 주는 것보다 쌀을 선물하는 게 훨씬 더 힘이 된다고 믿고 있어요."

김 이사장은 어렸을 적 소아마비를 앓고 나서 두 다리를 못 쓰게 됐다. 목발 없이는 일어설 수도 없는 그가 처음 쌀 나눔 잔치를 계획할 때 주변에서는 반대하는 의견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재단에 후원이 끊길까 봐 우려한 것이다.

그는 "임마누엘의 집이 다른 사람들에게 베풀기 시작하면 '이제 먹고살 만한가 보다' 하고 후원이 끊길 것이라고 걱정했지만 제가 받은 만큼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마음이 너무나 컸다"고 했다.

다행히도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임마누엘의 집' 장애인들이 다른 소외계층을 돕겠다고 하니 후원이 줄기는커녕 오히려 응원하는 이들이 늘어난 것이다.

1983년 서울 도봉구 안골부락에 장애인 10명과 함께 '임마누엘의 집'의 문을 처음 연 김 이사장은 현재 임마누엘복지재단·애향원복지재단을 이끌며 전국에 복지시설 11곳을 운영한다.

매년 쌀 잔치를 여는 것을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다는 그는 "부자가 아니라도 가진 게 있을 때, 베풀 게 있을 때 나눌 줄 알아야 한다"며 활짝 웃었다.

runr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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