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곳곳 특수학교 건립 '충돌'…중랑·서초도 강서구 판박이
"기존 장애인·노인시설 있다" 반발…동진학교 5년째 터도 못잡아
건립 반대급부·'지역발전 견인' 대체시설 요구
(서울=연합뉴스) 이재영 기자 = 최근 열린 서울 강서지역 특수학교(서진학교) 설립 토론회에서 장애인 학생 부모들이 학교 설립 반대 주민들에게 무릎을 꿇고 지지를 호소하자 이런 현실을 안타까워하는 여론이 들끓었다.
서진학교 설립에 반대하는 지역주민들과 이 지역 국회의원인 자유한국당 김성태 의원은 학교 부지인 가양동 옛 공진초등학교 자리에 특수학교 대신 국립한방병원 건립을 요구한다.
특히 주민들은 강서구에 교남학교라는 특수학교 한 곳이 이미 있다는 점을 들어 "왜 또 우리 지역이냐"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17일 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서진학교 말고도 교육청이 현재 설립을 추진 중인 다른 특수학교 2곳 역시 주민 반대로 난항을 겪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시교육청은 지난해 발표한 특수교육 운영계획에서 서초구 염곡동 옛 언남초등학교 자리(나래학교)와 중랑구(동진학교)에도 2019년 3월 개교를 목표로 지체장애인 특수학교를 짓기로 했다.
나래학교는 현재 설계업체 선정을 마치고 실시설계에 들어갔다. 학교 터가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으로 묶여 있어 기존 학교건물 해체와 새 건물 신축을 위한 그린벨트 관리계획변경 절차도 진행 중이다.
하지만 서진학교와 마찬가지로 주민 반대가 가장 큰 걸림돌이다.
지난 6월 열린 나래학교 신설을 위한 주민토론회는 서진학교 주민토론회처럼 파행됐다. 주민 수십 명이 토론회장 앞까지 왔다가 토론에는 참여하지 않고 돌아간 것으로 전해졌다.
작년 11월 나래학교 신설 행정예고 때 제출된 의견 500여건 중에도 반대가 많았다.
반대 이유는 우선 인근 내곡동에 다니엘학교라는 특수학교가 있으므로 '특수학교 지역균형 설립' 원칙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서울시 자치구 가운데 특수학교가 하나도 없는 곳이 8개나 되는데 강서구에 2개를 짓는 것은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는 서진학교 반대 이유와 판박이다.
나래학교 반대 측은 염곡동이 낙후해 특수학교보다 지역발전 시설이 들어오는 것이 맞고, 특수학교를 지으려면 주변 지역을 1종 전용주거지역에서 1종 일반주거지역으로 올려주는 반대급부를 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주민들 요구대로 이렇게 '종 상향'이 이뤄지면 현재 1∼2층인 주택을 4층까지 올릴 수 있게 된다.
주민들은 언남초와 주민센터가 내곡동 쪽으로 옮겨간 데 이어 다른 공공기관 등의 이전도 예정돼 박탈감이 심한 상황에서 특수학교까지 설립하는 것은 너무하다는 주장도 편다.
지역주민 숫자가 150가구 정도로 적어 나래학교 주민 반대는 서진학교에 견줘 작은 편이다. 하지만 서울시가 오는 10월까지 진행할 '종 상향'을 위한 연구용역에서 주민이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반대가 더 거세질 수 있다. 종 상향 권한은 서울시교육청이 아닌 서울시에 있다.
동진학교 상황은 훨씬 더 심각하다.
다른 2곳보다 먼저 추진되기 시작했지만 5년째 학교를 지을 땅조차 못 정했다.
이 탓에 개교일도 2020년 3월로 1년 늦춰졌다.
애초 동진학교는 한 중학교 땅 일부를 사용하는 방식으로 추진됐으나 주민 반대로 무산됐다.
현재 서울시교육청은 중랑구 내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 소유 땅과 사유지 등 2곳을 동진학교 후보지로 놓고 확보 방안을 마련 중이다.
하지만 땅을 확보한다고 해도 설립이 일사천리로 진행될지는 알 수 없다.
이 지역주민들도 '의료안심주택'이라는 노인복지시설이 이미 들어서 있다는 점을 내세워 특수학교 설립에 반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순경 서울특수학교학부모협의회 대표는 "'특수학교 설립에 반대하지는 않지만 우리 동네에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설립에 반대하지 않는 게 아니다"라면서 "특수학교에 대한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다른 복지시설이 있다고 특수학교를 반대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장애인은 교육할 필요 없이 시설에나 수용하면 된다는 낡은 생각이 아닐 수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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