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차 놓친 샐러리맨 잠자리는 옛말…日캡슐호텔의 변신
목조 벽 나뭇결·사방등으로 "일본 분위기" 연출, 외국 관광객에도 인기
커진 침대에 공용 스페이스 갖춰 "교류" 기회도 제공
(서울=연합뉴스) 이해영 기자 = 막차를 놓친 샐러리맨이나 취객들이 주로 이용하던 일본의 캡슐 호텔이 눈부시게 변화하고 있다.
캡슐 호텔은 한 사람이 겨우 누울 정도의 좁은 침대 하나가 달랑 놓여있어 '개미집'으로 불릴 만큼 좁게 사는 일본의 또 다른 상징으로 간주돼 왔다. 일부 호사가들은 너무 좁아 답답하다는 의미에서 "관(棺)"으로 부르기도 했다.
그런 일본의 캡슐 호텔이 독특한 디자인과 서비스로 진화하고 있다. 여전히 일반 호텔이나 여관과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의 저렴한 숙박비가 가장 큰 무기지만 최근 공간을 넓히고 "일본 분위기"를 살린 세련된 디자인으로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호평을 받고 있다.
새롭게 변신한 캡슐 호텔은 교토(京都) 등 일본의 대표적 관광지에서 속속 개업, 일본 정부가 역점 사업으로 추진 중인 관광진흥에도 일조하고 있다.
작년 1년간 일본의 대표적 관광지인 교토(京都)를 찾은 외국인 관광객은 318만 명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관광객이 폭발적으로 늘다 보니 교토에는 호텔과 민박 등 다양한 숙박시설 개업이 잇따르고 있다. 그중에서도 눈부신 진화를 보이고 있는 숙박시설이 바로 캡슐 호텔이다.
NHK에 따르면 올 2월 교토시 중심가에 종전과는 전혀 다른 캡슐 호텔이 문을 열었다. 4층 건물에 150여 객실 규모인 이 호텔의 방은 모두 목조다. 나뭇결을 살린 벽이 일본적 분위기를 자아낸다. 복도에는 네모진 나무나 대나무 틀에 종이를 바른 사방등(四方燈)을 설치했다. 겉모습만 변한 게 아니다. 체격이 큰 외국인도 여유 있게 쉴 수 있도록 방 넓이를 종전의 캡슐 호텔보다 크게 했다.
키 177㎝의 취재기자가 침대에 누워도 발이 침대 끝에 닿지 않을 정도로 여유가 있다. 더 쾌적한 방을 원하는 고객을 위해 넓이가 배인 방도 갖췄다. 다락식 침대 옆에 데스크까지 설치한 공간을 갖춰 완벽한 "개실(個室·개인실)"이라도 해도 좋을 정도다.
가장 큰 관심사인 요금은 여름철의 경우 1박에 4천 엔(약 4만 원)대 부터. 캡슐 호텔 치고는 다소 높은 편이지만 일반 호텔이나 여관에 비하면 압도적으로 싸다. 저렴한 요금과 개성적인 디자인이 인기를 끌어 개업한 지 반년이 지난 현재 숙박객의 절반은 외국인이라고 한다. 이곳에서 숙박한 영국인 남성은 "요금과 품질이 모두 중요하지만, 이곳은 둘 다 훌륭하다. 교토에 오는 기회가 있으면 다시 묵고 싶다"며 만족스러워했다.
캡슐 호텔이 이렇게 진화한 배경은 말한 것도 없이 숙박시설 증가에 따른 경쟁격화다. 외국인 관광객이 급증하자 숙박시설이 각지에 속속 새로 문을 열고 있다. 특히 민박과 게스트하우스 등 요금도 적당한 숙박시설이 올해 7월까지의 3년간 무려 4배로 늘었다. 교토 시내에만 1천700여 숙박시설이 고객 쟁탈전을 벌이고 있다. 이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다른 곳에는 없는 '개성'을 내세우는 캡슐 호텔이 속속 등장하고 있는 것.
교토 시내에 지난 7월 새로 문을 연 캡슐 호텔은 건물 8층 한 층을 통째로 공용 공간으로 조성했다. 이 공간은 조리기구 일습을 갖춘 부엌과 거실, 소파를 구비한 멋진 라운지까지 있다. 업소 측은 공용 공간을 활용해 숙박객들 간의 교류가 이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호텔 관계자는 "대부분의 캡슐 호텔이 방 안에서 어떻게 쾌적하게 지내느냐에 중점을 두지만, 그것만으로는 고객이 다시 찾게 하기 어렵다"면서 "그래서 생각해 낸 게 '교류형' 캡슐 호텔"이라고 설명했다.
전략은 보기 좋게 맞아떨어졌다. 오픈한지 2개월 남짓 만에 공용 공간의 활용 폭이 넓어지고 있다고 한다. 라이브 공연 등도 빈번히 열린다. 라이브 공연은 숙박객뿐 아니라 현지 주민들에게도 개방한다. 이 호텔에 여러 날째 묵고 있다는 호주 남성은 "이 공간에서 5명의 숙박객과 만나 친하게 됐다"면서 "개방된 장소에서 자연스럽게 친구가 생겼다"고 말했다. 이 호텔 운영회사 측은 앞으로 3년간 국내외에 이런 캡슐 호텔 10개를 오픈할 계획이다.
한 캡슐 호텔 관계자는 "요금도 적당한 데다 자기 나라에는 없는 분위기의 공간에 묵는 게 외국인에게는 세련되고 멋지게 여겨지는 것 같다"고 인기의 배경을 분석했다.
일본 국내에는 300개 정도의 캡슐 호텔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NHK는 2020년 도쿄올림픽과 패럴림픽을 앞두고 기존의 이미지를 확 바꾼 진화한 캡슐 호텔이 앞으로도 계속 생겨날 것 같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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