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이냐 역사보존이냐'…춘천 레고랜드 사업 '시계 제로'

입력 2017-09-14 16:36
'개발이냐 역사보존이냐'…춘천 레고랜드 사업 '시계 제로'

문화재 발굴·자금 미확보·시행사 변경 등으로 6년 '허송세월'

진입도로·교량만 마무리 단계…정작 본 공사는 '삽도 못 떠'

(춘천=연합뉴스) 이상학 기자 = 강원도 춘천시를 글로벌 관광도시로 바꿀 것으로 기대됐던 레고랜드 사업이 '시계 제로' 상태에 빠졌다.

춘천시 중도(中島)에 추진 중인 레고랜드 테마파크 조성 사업이 첫 삽을 뜬지 6년이 지났지만 제대로 진행되지 못하고 아직 짙은 안갯속을 헤매고 있다.

예정대로라면 내년 개장돼야 하지만 섬으로 향하는 진입도로와 교량만 마무리 단계일 뿐 정작 해당 용지는 '허허벌판'이다.

선사시대 매장 문화재 발굴로 지연된 데다 본 공사에 필요한 자금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외국 투자자인 멀린사가 본공사 직접 투자를 포기해 점점 더 수렁에 빠져드는 형국이다.

지역사회는 강원관광의 중흥기를 이끌 것이라는 기대감을 놓지 않고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이제는 회생 불가능한 '애물단지'로 전락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레고랜드 사업은 춘천시 의암호 한가운데 있는 섬인 중도 106만㎡에 모두 5천11억원을 들여 테마파크와 호텔, 워터파크, 상가 등을 조성하는 대형 프로젝트다.

2011년 강원도가 영국 멀린사 등과 투자합의 각서를 체결하며 시작됐다.

개장만 하면 연간 200만명 이상이 찾아 지역경제를 이끌 든든한 지원군으로 보고 '장밋빛 기대'에 부풀었지만, 예상치 못한 매장 문화재가 대거 발견돼 발목이 잡혔다.

중도는 1960년대 말 의암댐 건설로 북한강 물길이 막히면서 호수 한가운데에 생긴 섬으로 과거에도 '선사시대 유적'이 다수 발견된 곳이다.



지난 1980년대 국립중앙박물관 발굴 조사에서도 신석기시대부터 삼국시대에 걸쳐 조성된 집터와 고인돌 등 270여 기 이상이 나와 섬 전체가 대규모 집터로 확인된 바 있다.

이런 가운데 강원도가 국내외 투자사와 손을 잡고 개발사업에 본격적으로 나서자 유적 보전 문제가 불거졌다.

1천 기가 넘는 선사시대 유구(遺構) 발굴에 문화재를 보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컸지만 격렬한 논쟁 끝에 당시 문화재위원회는 유적 이전 보존을 조건부로 승인, 사업 추진이 성사됐다.

이후 속도감 있게 진행될 것으로 예상했지만, 레고랜드 사업은 '산 넘어 산'에 부딪쳤다.

특히 1천500억원의 사업비를 미리 확보하지 않고 추후 주변 부지를 매각해 공사비를 충당하는 사업 방식이 또 다른 걸림돌로 작용했다.

빚을 내 땅을 팔아 공사비를 조달하겠다는 안일한 계획이 계속 도마 위에 올랐다.

문화재 발굴 비용 증가로 공사비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대출금에 대한 이자 압박이 거세졌다.

설상가상 문화재 보존지역이 추가되면서 일부 부지는 매각 대상에서 제외돼 적자 폭은 더 늘어날 전망이다.

매각 가능한 부지를 모두 팔아도 비용마련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춘천시민사회단체네트워크는 최근 성명에서 "사업 추진을 강행하기 위한 발굴과정에서 출토된 수천 점의 유적과 유물은 개발의 삽날에 무참히 파괴되고 소중한 춘천의 역사는 근거를 찾기도 전에 사라질 운명에 처했다"며 "강원도의회가 조사특위를 구성해 원점에서 재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렇다고 사업을 전면 철회하더라도 문제 해결이 쉽지 않아 '진퇴양난'에 빠졌다.

레고랜드 조성이 무산됐을 때 손실액은 대출금 상환 약 1천29억원(지난달 기준)에 달하고 진입교량 건설 국비 450억도 반납해야 한다.



하중도 부지 원상복구비를 비롯해 출자사 손해배상 등 추가 비용도 과중한 부담이다.

게다가 하중도 부지가치 하락은 물론 외자 유치 실패로 강원도의 대외적 신인도 저하와 향후 국비 보조사업 추진에 악영향이 우려된다.

이 때문에 지역사회는 최후 방안으로 강원도가 추가 보증을 서거나 직접 투자를 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시공사 선정 변경도 사업 지체에 한몫했다.

시공사에 '선 시공 후 정산'을 조건으로 내세우다 보니 이 과정에서 초기 사업비를 투자하겠다는 전략적 투자사의 등장과 주변 부지 우선 매수협상권 요구 등 특혜 시비는 혼란을 가중했다.

올해 들어서야 시행사가 최종 선정됐지만, 그 사이 레고랜드를 추진하던 시행사 전 대표와 전·현직 간부들의 법정 다툼이 1년 넘게 이어졌다.

위기돌파구로 관심이 쏠렸던 멀린사의 본공사 직접 투자(1천500억원)도 결국 무산됐다.

자금조달 계획까지 발목을 잡혔지만, 강원도는 멀린이 호텔 550억원, 현물출자 1천100억원 등 1천650억원 투자를 확정한 데다 주변 용지를 매각하면 사업 추진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현재 레고랜드 공사는 중도로 향하는 교량과 연결도로 개설이 막바지에 이르고 있지만, 자칫 '주춧돌 없는 기둥'이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의 시선이 많다.



국회에서는 레고랜드 대신에 유적박물관 등을 조성해 유적 보존에 힘을 써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더는 시간을 허비하지 말고, 유적을 보존하는 방향으로 전환해 미래 세대에 소중한 역사를 물려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강원도의회는 레고랜드 조사특위 구성 및 행정사무조사권 발동을 검토하고 나서다 압박 수위를 잠시 낮췄다.

강원도가 사업 추진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겠다고 밝힌 데 이어 시행사 측도 사업비 절감 등 대책을 마련하겠다는데 따른 것이다.

최성현 도의원(춘천)은 "강원도가 사업 추진 과정에 한 점의 의혹도 없이 투명하게 진행하겠다고 의회에 밝힌 만큼 지켜볼 필요가 있다"며 "무조건 사업을 접는다는 것은 손실이 발생할 수 있고 이는 결국 국민과 도민 손실로 이어져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강원도 관계자는 "문화재 문제는 현재 시점에서 논의대상도, 고려 대상이 아니다"며 "시행사인 엘엘개발에 경영지원실을 신설하는 등 사업 정상화와 투명성 강화, 신규 투자자 물색 등에 총력을 기울여 차질없이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세계적인 놀이공원 조성 사업을 둘러싸고 지역사회는 개발이냐, 유적 보존이냐는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ha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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