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넘게 부산항에 발묶인 한진해운 화물들 골칫거리
화주들 포기한 컨테이너 600여개 터미널 운영 지장 초래
운영사들 '밀린 보관료 안 받을테니 옮기거나 폐기' 설득
(부산=연합뉴스) 이영희 기자 = 1년 전 법정관리에 들어가 파산한 한진해운이 수송을 맡았던 화물 일부가 아직도 부산항에 남아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
17일 부산항만공사와 터미널 운영사들에 따르면 현재 신항 5개 터미널에 남아 있는 한진해운 화물은 20피트짜리 컨테이너 629개에 이른다.
한진해운이 모항으로 사용했던 3부두(HJNC)에 가장 많은 529개가 있고 5부두(BNCT)에는 52개가 장치장 일부를 차지하고 있다.
2부두(PNC)에는 32개, 1부두(PNIT)에는 6개, 4부두(HPNT)에는 10개가 각각 남았다.
지난해 9월 1일 법정관리 개시 이후 한진해운 선박들이 외국 항만 당국의 입항거부 등으로 목적지로 가지 못하고 부산항에 내려놓은 화물의 일부이다.
터미널 운영사들은 "현재 남은 한진해운 컨테이너에 든 화물은 중고 자전거, 헌옷, 목재, 재활용 플라스틱 등 값싼 것이 대부분이고 과일이나 육류가 든 냉동 컨테이너도 일부 있다"며 "오랜 시간 부두에 방치되다 보니 변질하거나 부패해 못쓰게 된 것이 많다"고 전했다.
터미널 운영사로선 주인이 찾아가지 못한 이 화물들이 골칫거리다.
가뜩이나 여유가 없는 장치장 일부를 차지해 터미널 운영에 지장을 주는 데다 보관료와 조작료 등이 고스란히 밀렸기 때문이다.
컨테이너 보관료는 40피트짜리 수입화물 기준으로 연간 400만원가량이다.
과일이나 육류를 담은 냉동 컨테이너는 계속 전기를 공급해야 하는데 그 비용 부담도 만만치 않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터미널 운영사로서는 하루라도 빨리 이 화물들을 치워야 하지만 쉽지가 않다.
엄연히 주인이 있는 물건인 데다 보세구역 안에 있어 화주의 동의와 세관의 허가 없이는 폐기하거나 이동할 수 없다.
이미 판매할 시기를 놓쳤거나 가져가 봐야 돈이 안 된다고 보고 포기한 화주들이 돈을 들여서 다른 곳으로 옮기거나 폐기할 가능성도 별로 없다.
화주가 부산항에 남은 컨테이너를 애초 목적지나 부두 밖으로 옮기려면 터미널 운영사에 그동안 밀린 보관료 등을 지불해야 한다.
한진해운의 컨테이너를 빌려 물건을 담았기 때문에 기한 내에 컨테이너를 반납하지 못한 데 다른 지체상금도 물어야 한다.
화주 입장에서는 못쓰게 됐거나 값어치가 떨어진 화물을 옮기는 비용이 화물의 가치보다 더 많이 들어 배보다 배꼽이 큰 꼴이 될 수 있다.
운영사들은 화주를 수소문해 그동안 밀린 보관료 등을 한 푼도 받지 않을 테니 화물을 옮기거나 터미널이 폐기할 수 있도록 포기각서를 써 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파산한 한진해운의 자산을 관리하는 법원에도 컨테이너 반납 지체상금을 면제해 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한 운영사 관계자는 "아직 화물을 내버려둔 화주는 사실상 물건을 포기한 것으로 봐야 한다"며 "한진해운 때문에 손해를 본 화주에게 한진해운에서 빌린 컨테이너 반납이 늦어진 책임을 묻겠다면 누가 응하겠나"고 말했다.
터미널에 남은 화물 대부분이 중국, 동남아 등 제3국으로 가는 환적화물이라 운영사들이 외국에 있는 화주와 연락해 설득하는 게 간단한 일이 아니다.
컨테이너 하나에 여러 화주의 물건이 든 경우에는 더욱 힘이 든다.
화주가 포기한 환적화물을 처리하는 법 규정이 없는 것도 문제 해결을 어렵게 한다고 운영사들은 말했다.
국내 화주가 수입한 화물은 일정 기간이 지나도록 찾아가지 않으면 터미널 운영사가 폐기할 수 있도록 규정돼 있지만 환적화물은 이에 관한 규정이 없어 관련 규정 마련을 관세청에 요청한 상태다.
터미널 운영사들은 한진해운 파산이 남긴 후유증이 지속하지 않을까 우려한다.
2001년 조양상선 파산 때에는 화주들이 방치한 화물을 모두 처리하는 데 최장 3년이 걸린 것으로 알려졌다.
lyh9502@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