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미스·아트 서스펜스…독특한 느낌의 日소설들 온다
신간 '갱년기 소녀' '유토피아' '암막의 게르니카'
(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 장르문학 토양이 척박한 국내에서는 쉽게 접하기 힘든 독특한 스타일의 일본 소설들이 잇따라 나왔다. 또 하나의 장르를 개척하는 작가들은 우연찮게 모두 여성이다.
2000년대 후반 이후 일본 문학계에서 새로운 장르로 자리 잡은 '이야미스'는 '싫다'라는 뜻의 일본어 '이야다'(いやだ)와 미스터리의 합성어다. 읽고 나면 왠지 기분이 나빠지는 미스터리라는 뜻. 이 장르의 작품들은 추리소설 형식을 취하면서도 사건의 논리적 해결이나 트릭보다는 인간 내면의 어두운 심리 묘사에 초점을 맞춘다.
최근 번역·출간된 '갱년기 소녀'(문학동네)의 마리 유키코(眞梨幸子)는 미나토 가나에(湊 かなえ)와 함께 이야미스를 이끄는 선두주자로 꼽힌다. '갱년기 소녀'는 1970년대 순정만화 '푸른 눈동자의 잔'을 기억하는 40∼50대 중년 여성들 사이의 미스터리를 그렸다.
만화 팬클럽 내에서도 열혈 팬심을 자랑하는 간부들의 모임인 '푸른 6인회'. 등장인물들 사이의 미묘한 알력과 경쟁심, 잔뜩 뒤틀린 내면 묘사가 장르의 특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겉으론 멀쩡하고 평온해 보이는 인물들은 낭비벽에 허언증을 갖고 있거나, 모임 안에서 인정받기 위해 눈치를 살피기에 바쁘다.
어린 시절 순정만화를 매개로 모인 이들은 실종과 살인이라는 현실의 극단적 사건과 마주하며 파국으로 치닫는다. 꿈과 현실의 괴리에서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폐쇄적 커뮤니티에 의존한다는 점에서 사회파 미스터리와 일맥상통하는 면도 있다. 작가는 회사원으로 일하던 중 어떤 악령보다 인간이 더 무섭다는 사실을 깨닫고 작가로 진로를 바꿨다고 한다. 김은모 옮김. 404쪽. 1만4천500원.
'고백'과 '리버스' 등으로 국내에 이름이 알려진 미나토 가나에도 신작 '유토피아'(영상출판미디어)를 냈다. 같은 마을에 사는 세 여성의 관계가 복잡하게 얽혀가는 과정을 그린 미스터리다.
다리가 불편해 휠체어 생활을 하는 딸을 둔 나나코, 남편의 전근으로 지방에 내려와 사택에 살면서 딸을 키우는 미쓰키, 대도시에서 이주해온 도예가 스미레. 셋은 나나코의 딸을 위한 자선단체를 만든다.
선의로 시작한 자선단체는 사소한 가치관 차이로 삐걱거리고, 인터넷에 나나코의 딸이 걷는 걸 봤다는 글이 뜨면서 불협화음이 계속된다. 5년 전 마을의 자산가를 살해하고 도주한 살인범이 귀향했다는 소문이 나돌고, 스미레의 공방에 화재가 발생하면서 불온한 사건이 모습을 드러낸다.
자선단체에 참여한 이들은 표면적으로 선의에 기반해 행동하지만 그 자체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선의를 합한 결과가 유토피아 대신 질투와 의심, 균열이라는 점에서 악의를 전면에 내세운 이야기보다 더욱 꺼림칙하게 느껴진다. 현정수 옮김. 368쪽. 1만3천원.
하라다 마하(原田マハ)는 큐레이터 경력을 발판 삼아 '아트 서스펜스'라는 자신만의 장르를 확고히 다지고 있다. 예술작품은 단순히 흥미를 북돋우는 소재가 아니라 작가의 주제의식을 전달하는 핵심 역할을 한다.
앙리 루소의 미공개 작품을 두고 벌어지는 두뇌싸움을 그린 '낙원의 캔버스'에 이어 최근 국내에 출간된 '암막의 게르니카'(인디페이퍼)에는 파블로 피카소의 명작 '게르니카'가 전면에 등장한다. 소설은 피카소가 게르니카를 작업하던 1937년 파리와 9·11테러의 상처가 아물지 않은 2003년 뉴욕을 오간다.
게르니카가 탄생할 당시 피카소를 둘러싼 인물들의 갈등, 미국의 이라크 공습을 앞두고 암막으로 가려진 게르니카의 비밀이 번갈아 펼쳐진다. 작가는 픽션과 논픽션을 넘나들며 반전 메시지를 전한다. 김완 옮김. 444쪽. 1만5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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