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인단체, 동포4세 국내체류 한시 허용에 "환영하지만 미흡"
"언 발에 오줌 누기…법령 개정으로 안정적 정착 보장해야"
(서울=연합뉴스) 이희용 기자 = 정부가 현행 법령상 재외동포로 인정받지 못하는 고려인(러시아를 비롯한 CIS 동포)과 조선족(중국동포) 4세들도 2019년까지 국내에 머물 수 있도록 구제 조치를 내놓은 것에 대해 고려인 지원단체들은 일단 환영의 뜻을 표시하면서도 근본적인 개선책을 촉구했다.
법무부는 12일 "4세대 고려인 등이 재외동포로 인정받지 못해 국내 체류 중인 부모와 헤어져야 하는 아픔을 해소하기 위해 2019년 6월까지 한시적으로 방문동거 비자(F-1) 자격을 부여하는 인도적 조치를 마련했다"고 밝혔다.
'재외동포의 출입국과 법적 지위에 관한 법률'(재외동포법) 시행령은 재외동포의 자격을 대한민국 국적을 보유했던 자의 손주(3세대)까지만 인정하고 있다. 따라서 부모와 함께 모국으로 귀환한 고려인 4세의 경우 성인이 되면 한국을 떠나 생이별하거나 방문 비자(C-3-8)로 재입국해 3개월마다 양국을 오가야 하는 형편이다.
경기도 안산시의 고려인 지원단체 '너머'의 김승력 이사는 "아직 국내 고려인과 각 단체의 입장을 조율하지 못한 상태여서 개인적인 견해를 말할 수밖에 없다"고 전제한 뒤 "오늘 정부가 내놓은 조치는 당장 쫓겨날 처지에 놓여 있거나 한국과 CIS 지역을 들락날락하는 고려인 4세들에게는 도움이 되지만 한시적인 조치여서 언 발에 오줌 누기에 그친다"고 평가했다.
F-1 비자 소지자는 취업할 수 없어 성인으로서 안정적인 생활을 하기 힘든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불법취업을 하다 적발되면 언제든지 추방될 수 있기 때문이다.
광주광역시 광주고려인마을의 홍인화 이사도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 수는 있겠지만 소나기만 피하면 된다는 식으로 미봉책을 내놓을 것이 아니라 이들의 안정적인 정착을 보장하도록 하루빨리 법령을 개선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재외동포법 시행령 개정은 국무회의만 거치면 되지만 법무부, 외교부, 고용노동부 등 관련 부처의 견해가 엇갈려 정부가 확실한 방침을 정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고려인들은 조선족과 달리 대부분 한국어를 할 줄 몰라 국내 생활이 어려운 만큼 해외 거주 고려인만을 대상으로 하는 '고려인동포 합법적 체류자격 취득 및 정착 지원을 위한 특별법'(고려인특별법)을 개정해 국내 고려인도 지원하도록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올해가 고려인 중앙아시아 강제이주 80주년이어서 국민의 관심도 높아졌다.
고려인과 고려인 지원단체는 지난 6월 9일 '광화문 1번가 국민인수위원회'에서 하승창 대통령비서실 사회혁신수석에게 고려인특별법 개정 국민청원을 전달했다. 포털사이트 다음 아고라 이슈청원 코너 등에서도 서명운동이 진행되고 있다.
현재 국회에는 4세 이상도 재외동포로 인정하고 국내 고려인 지원을 강화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법률 개정안이 여러 건 제출된 상태다.
김경협 의원실의 한 관계자는 "정부의 이번 조치와 관련해 법무부와 의견 교환을 한 적은 없다"면서 "법무부의 발표는 일단 환영하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므로 동포 체류 요건 합리화, 4세 이상 재외동포 지위 인정, 한국어 교육과 의료 지원 등을 담은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지난달 말 기준으로 중국·러시아·우즈베키스탄 등 사회주의국가 출신 4세 이상 동포 2만7천560명이 국내에 체류하고 있으며, 이 가운데 성인은 179명인 것으로 법무부는 추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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