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켈 '수면유세' 맹위…비판도 논쟁도 없이 4연임행 순항
엉겁결에 의욕 꺾이는 경쟁자…"철저히 계산된 대세론 유지전략"
(서울=연합뉴스) 김수진 기자 = 이달 총선에서 4선 연임에 도전하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조용한 유세 전략이 주목을 받고 있다.
경쟁자에 대한 비판을 자제하고 논쟁이 불붙는 의제를 회피하는 모습 때문에 '수면유세(sleeping campaign)'라는 말까지 따라붙었다.
10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메르켈 총리가 노출한 최근 유세의 가장 두드러진 특색은 무비판이다.
기독민주·기독사회당 연합을 이끄는 메르켈 총리는 경쟁자인 마르틴 슐츠 사회민주당 당수를 거의 공격하지 않고 있다.
메르켈 총리는 이달 초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한 슐츠 당수와의 양자 TV토론에서 난민, 북한, 디젤 스캔들 등 국내외 현안에 대해 열띤 토론을 하면서도, 공격보다는 슐츠 당수의 예공을 방어하는 데 집중했다.
이 같은 전략은 무슬림, 난민 유입에 반대하며 유럽통합에도 반감을 드러내는 반기득권 우익 포퓰리스트 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AfD)'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AfD는 이번 총선에서 5% 이상 지지를 얻어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처음으로 연방의회에 진출하려는 극우세력으로 경계를 사고 있다.
메르켈 총리는 이달 초 하이델베르크 대학광장에서 연설하던 중 누군가 잇따라 던진 토마토 2개의 공격을 받았지만, 아랑곳하지 않은 채 그날 저녁 같은 상의를 입고 남은 일정을 소화했다.
전문가들은 메르켈 총리가 이런 '수면유세 전략'을 통해 반대파의 의욕이 꺾이기를 바란다는 점을 지지자들에게 보여주고 있다고 분석했다.
메르켈 총리는 논쟁적인 이슈를 가급적 다루지 않는 전략도 구사하고 있다.
이를테면 난민 문제에 관해 이야기할 때는 그들을 자발적으로 도와준 수백만명에게 감사하다고 말하고, 디젤차 배출가스 스캔들에 관해서는 경영진을 비판하면서도 80만명을 고용한 자동차 산업을 지지한다며 균형점을 찾는 방식이다.
FT는 이 같은 접근 방식이 철저히 계산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메르켈 총리는 지난달 기자회견에서 선거 캠페인이 왜 이렇게 지루한지를 묻는 말에 상대에게 모욕을 주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정당 정책을 설명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언제나 이것을 듣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다"면서 "나에게는 이 방식이 지루하지 않고 흥미롭다"고 답했다.
메르켈 총리의 전략은 효과를 보고 있다. 메르켈 총리와 슐츠 당수의 TV토론 직후 시청자를 상대로 조사한 결과 55%가 메르켈 총리를 신뢰한다고 답했고, 35%만이 슐츠의 손을 들었다.
현재 기독민주·기독사회당 연합의 지지율은 38%로 사회민주당(22%)을 훨씬 앞지르고 있으며, 승리를 거머쥐었던 2013년 총선 당시 지지율 41%에도 근접하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수면유세' 전략에도 대가가 따르고 있다고 진단한다.
지지자들이 메르켈 총리를 지원하더라도 전처럼 열정적이지는 않기 때문이다. 기독민주당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메르켈 총리의 연설이 구체적이지 않다는 불만도 나온다.
한 기독민주당 지지자는 "메르켈 총리는 독일이 아니라 세계 문제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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