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드 이중고' 직면 文대통령…中항의·진보 반발 달래기 고심

입력 2017-09-08 12:00
수정 2017-09-08 15:18
'사드 이중고' 직면 文대통령…中항의·진보 반발 달래기 고심

진보진영 일각 '촛불정신 배신' 주장도…靑, 이틀째 입장 안 내

"사드는 악성종양" 中 반발 노골화…시진핑, 통화요청에 무응답

침묵 지키는 文대통령, 내주 추진 여야대표 회동서 메시지 가능성

(서울=연합뉴스) 이상헌 박경준 기자 = 러시아 순방을 마치고 귀국한 문재인 대통령이 8일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발사대 4기의 전격 추가배치에 따른 '이중고'에 직면했다.

안으로는 추가배치로 인한 성주 주민과 진보진영을 중심으로 한 반발 여론에 맞닥뜨렸고, 밖으로는 중국 정부의 거센 항의에 부닥친 것이다.

박근혜 정부의 일방통행식 사드 도입을 비판했던 새 정부가 사드 발사대 추가 배치의 불가피성을 주장하며 대국민 설득에 나서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연출되면서 입장이 난처해진 셈이다.

북한의 6차 핵실험이라는 특대형 도발이 사드 발사대 추가배치를 부른 원인이지만, 진보 진영은 '촛불 배신'이라는 표현을 써가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정의당 이정미 대표는 전날 제주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사드 발사대 배치에 대해 "강정마을의 아픔이 소성리에서 재연됐다"며 "사드 배치와 같은 공약 뒤집기는 시민들의 지지를 배신하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노동당도 "소통·대화를 통한 합리적 국정운영을 바란 촛불 정신을 배신했다"고 주장했고, 참여연대는 "정부는 사드 배치 합의 과정을 진상조사하고 국회 동의를 받겠다는 약속을 저버렸다"며 "이제 중국의 반발은 정치·경제는 물론 군사 분야까지 확대될 것이고, 미국의 더 많은 무기구매 요구에 직면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물론 문 대통령이 집권하면 사드를 무조건 철회하겠다고 약속한 적은 없다.

문 대통령은 대선 당시인 지난 4월 19일 대선후보 합동토론회에서 "중국에도 북핵실험 강행시 사드배치가 불가피하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북한 핵·미사일 개발의 진전에 따라 사드가 불가피하게 배치될 가능성을 이미 공개적으로 밝힌 셈이다.

하지만 결과만 놓고 보면 청와대는 진보진영과 지지세력 일부가 반대하는 사드 추가배치를 단행했고, 그 과정에서 물리적 충돌이 수반된 데 대해 적잖은 부담을 느끼고 있다.

한 청와대 관계자는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현 상황을 "답답하다"고 했다.

지난 6일 국방부가 사드 추가배치 완료 시점을 공개하고 전날 이낙연 국무총리를 비롯해 김부겸 행정안전부·김은경 환경부 장관 등 관련 부처 수장들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불가피했다"는 취지의 입장을 내놨지만, 청와대는 공식 입장을 전혀 내놓지 않고 있다. 청와대의 고심이 그만큼 깊다는 방증인 셈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전날 "관련 부처가 입장을 정리해 말씀드리는 게 먼저이며 이를 포함해 청와대가 시간과 절차에 따라 입장을 밝힐 것"이라고 했지만, 총리와 해당 부처 장관들의 입장 표명이 하루 지난 이 날도 침묵을 유지하고 있다.



또 다른 문제는 중국 정부 차원의 반발이 가시화한다는 점이다.

사드 철회 의사 없이 환경영향평가라는 절차적 정당성을 강조한 한국 정부에 아쉬움을 토로했던 중국 정부는 추가 배치가 전격적으로 이뤄지자 반발을 노골화하고 있다.

사드 요격미사일의 사거리는 200여 km에 불과해 이번 발사대 추가 배치로 인해 중국의 안보에 미치는 근본적인 상황 변화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일부 중국 관영매체는 '막말'을 써가며 비난하고 있다. 군사 위협의 실질에 대한 문제제기라기보다는 한반도의 사드 배치가 확실히 기정사실화되는 것에 대한 국제정치학적 반발이라는 해석이 가능한 대목이다.

우선 중국정부는 김장수 주중대사를 초치했고, 겅솽 외교부 대변인은 사드 철수를 요구하며 강한 유감을 표명했다.

인민일보 자매지인 환구시보는 "사드는 북핵처럼 지역 안정을 해치는 악성종양"이라고 비난했다. "김치만 먹어서 멍청해진 것이냐" "한국은 북핵 위기와 강대국 간 다툼에 개구리밥이 될 것"이라는 '악담'도 서슴지 않았다.

중국 매체들은 북한의 6차 핵실험 당시에는 일절 논평을 내지 않았었다.

문 대통령은 북한 핵실험 직후부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통화를 시도하고 있지만, 응답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발(發) 먹구름이 기존의 사드 보복에 더해 중국 정부 차원의 본격적인 보복으로 이어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마저 나온다.

현재 문 대통령의 북핵 스탠스가 대화보다는 압박·제재로 무게추가 기운 상황에서 미국·일본과 함께 대북 원유차단에 공을 들이고 있지만 열쇠를 쥔 중국의 동참 가능성이 그다지 있어 보이지 않는다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문 대통령은 블라디보스토크에서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도 원유차단 동참을 촉구했지만, 돌아온 것은 부정적인 답변이었다.

이런 가운데 국내 보수진영을 중심으로 북한의 미사일로부터 수도권을 방어하기 위한 사드 포대의 추가배치 주장까지 나오고 있어 사드 뇌관은 쉽사리 제거되지 않을 전망이다.

상황이 복잡해지며 문 대통령의 고심도 깊어지고 있다. 전날 밤 귀국한 문 대통령은 이날 공개일정을 일절 잡지 않았다. 하지만 사드 추가배치가 완료된 상황에서 어떤 식으로든 대국민 입장을 내놓지 않을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이 엄중한 북핵 국면에서 여야정 상설국정협의체의 조속한 구성을 국회에 촉구하며 여야대표와의 회동 가능성을 언급한 만큼 이르면 내주 중으로 열릴 것으로 보이는 회동에서 메시지를 낼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honeyb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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