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독재자 마르코스 탄생 100년…뒷걸음치는 독재유산 청산
두테르테, 마르코스 고향 '특별 공휴일' 선포…"탄생 축하"
마르코스 가족, 반성없이 '가문의 부활' 노려…"범죄대가 치러야" 반발 여론
(하노이=연합뉴스) 김문성 특파원 =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이 필리핀 북부 일로코스 노르테주에 한해 오는 11일을 특별 공휴일로 선포했다.
일로코스 노르테주는 독재자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전 대통령의 고향으로, 이날은 마르코스 탄생 100년이 되는 날이다.
8일 필리핀 대통령궁에 따르면 이 지역 주민들에게 적절한 격식을 차려 마르코스 탄생을 축하하고 관련 행사에 참가할 기회를 줘야 한다는 것이 두테르테 대통령의 이례적인 공휴일 선포 이유다.
대통령궁은 "일로코스 노르테주 주민들은 2차 대전 참전 군인이자 걸출한 의원이고 전직 대통령인 마르코스의 삶과 국가 발전 기여를 매년 기념해왔다"며 마르코스를 독재자가 아닌 훌륭한 국가지도자로 평가했다.
다음 주 마르코스 고향에서는 문학과 예술 축제 등 그를 기리는 다양한 행사가 열린다.
마르코스는 1965년 대통령에 당선된 뒤 장기 집권을 위해 1972년 계엄령을 선포했다. 그의 계엄령하에서 고문과 살해 등으로 수만 명이 피해를 봤다. 마르코스는 1986년 '피플파워'로 불리는 민중봉기로 사퇴하고 하와이로 망명해 1989년 72세를 일기로 숨졌다.
마르코스가 권좌에서 쫓겨난 지 31년이 흘렀지만, 그의 그림자는 필리핀 사회에 아직 짙게 남아있다.
마르코스 가족들은 독재 시절 인권 탄압과 부패 행위에 대한 진정한 사과 없이 '가문의 부활'을 노리고 있다.
마르코스의 외아들 마르코스 주니어(59)는 작년 5월 부통령 선거에 출마, '개발 독재의 향수'를 자극하며 유권자들의 인기를 끌었다. 마르코스 주니어가 현 레니 로브레도 부통령에게 근소한 차이로 낙선했지만 차기 부통령 선거에 다시 도전하거나 대통령 선거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사치의 여왕'으로 불린 마르코스의 부인 이멜다(88)는 하원의원 3연임을, 딸 이미(61)는 일로코스 노르테주 주지사 3연임을 각각 하고 있을 정도로 마르코스 가족들의 정치적 기반은 건재한 편이다.
이멜다는 지난 5월 자신의 사망설이 트위터를 통해 돌자 "나는 아직 살아있다. 단지 늙었을 뿐"이라며 "필리핀에 국민을 위한 파라다이스를 복원하는 꿈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마르코스 가족들은 자신들에게 호의적인 두테르테 대통령의 후원에 힘입어 정치적 입지를 넓히고 있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마르코스 가족들의 뜻을 받아들여 작년 11월 마르코스 시신을 고향 마을에서 수도 마닐라 국립 '영웅묘지'로 이장할 수 있게 했다.
마르코스 계엄 시절 희생자들을 모독하는 것은 물론 독재자를 미화하는 것이라는 반발이 일었지만 두테르테 정부는 국민 화합을 외쳤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최근에는 마르코스 가족들이 부정축재 재산을 국가에 반납할 경우 과거 불법 행위에 대한 면죄부를 주는 방안을 거론해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는 "내가 마르코스 가족으로, 재산을 반환한다면 면책을 요구할 것"이라며 의회 승인과 법제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마르코스와 그의 가족들이 부정 축재한 재산은 100억 달러(약 11조3천억 원)로 추정된다. 이중 약 34억 달러(3조8천억 원)만 지금까지 회수됐다.
야권의 에드셀 라그만 하원의원은 "부정축재 재산 반납과 면책의 맞교환은 정의를 조롱하는 것"이라며 "범죄자는 반드시 범죄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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