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장원본 안 보여주고 이메일 압수…대법 "적법증거 아냐"
포털에 영장 사본 팩스로 보내 증거 확보…일부 무죄 확정
(서울=연합뉴스) 임순현 기자 = 검찰이 인터넷 포털업체에 압수수색영장의 사본만 팩스로 보내 압수한 이메일은 형사재판의 증거가 될 수 없다는 대법원 첫 판결이 나왔다.
압수물을 미리 확보하는 차원에서 사전에 영장 사본을 보냈더라도 이후 이메일 등이 저장된 CD나 USB를 받을 때는 원본을 제시해야 한다는 취지다.
대법원 2부(주심 권순일 대법관)는 7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안재구(84) 전 경북대 교수의 상고심에서 적법한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일부 혐의에 무죄를 인정한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다만 다른 혐의가 모두 유죄로 인정돼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 자격정지 3년이 선고됐다.
안 전 교수는 2006년 통일연대와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남측본부 등의 동향과 주요 인물의 정보를 수집해 대북보고문 형식으로 정리하고, 이적표현물 30여건을 인터넷 등에 올린 혐의(국보법상 자진지원 및 찬양·고무)로 기소됐다. 종북성향 인사들과 북한 주체사상과 선군정치를 동조하는 이적단체인 '통일대중당'을 구성하려 한 혐의(국보법상 이적단체구성)도 받았다.
재판에서는 검찰이 포털사에서 압수한 안 교수의 이메일 3개를 적법한 증거로 볼 수 있는지가 쟁점이 됐다.
검찰은 이메일을 확보하기 위해 포털사 여러 곳에 압수수색영장 사본을 팩스로 보낸 후 검찰 직원을 보내 영장 원본을 제시하고 이메일이 저장된 CD나 USB 등을 건네받았다. 하지만 한 업체의 경우 영장 원본을 제시했는지를 입증하지 못했다.
1, 2심은 "검찰이 영장 원본을 제시했는지를 인정할 만한 뚜렷한 증거가 없다"며 "원본을 제시하지 않고 압수한 이메일은 위법수집증거에 해당해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다른 혐의에는 모두 유죄를 인정했다.
한편 법원은 수사기관이 팩스 등을 통해 사전에 영장 사본을 보내고 이후 원본을 제시한 후 이를 건네받는 방식 자체는 '수사의 밀행성' 등을 이유로 적법한 압수수색이라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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