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릭 전 USTR대표 "한미FTA 폐기는 미국을 루저로 만들 것"

입력 2017-09-06 15:51
졸릭 전 USTR대표 "한미FTA 폐기는 미국을 루저로 만들 것"

전 세계은행 총재, WSJ 기고문서 미 의회에 "트럼프 막아라" 촉구



(서울=연합뉴스) 강건택 기자 = 로버트 졸릭 전 세계은행 총재는 5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폐기' 협박과 관련해 "(FTA에 관한) 서울과의 싸움은 미국을 루저(loser)로 만들 것"이라고 경고했다.

조지 부시 전 행정부에서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와 국무부 부장관을 지낸 졸릭 전 총재는 이날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 기고문에서 "트럼프의 무역 정책이 난파를 향해 속도를 내고 있다"며 이같이 지적했다.

한미FTA 폐기의 결과가 오히려 미국에 손해를 끼칠 수 있다는 것이 그 이유다.

특히 농부, 목장주, 제조업자, 서비스산업 등 미국 수출업자에 대한 한국의 무역장벽이 높아질 것으로 예상했다. FTA가 없어지면 한국의 평균 관세가 약 14%까지 올라갈 수 있는데 이는 미국 평균 관세의 4배에 해당한다.

반면 유럽연합(EU)은 한국과의 무역협정 덕분에 거의 공짜로 한국 시장에 접근할 수 있어 FTA 폐기 이후의 미국보다 상대적으로 경쟁력을 갖추게 된다.

게다가 중국과의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갈등에 북한의 안보 위협으로 이중고를 겪는 한국에 FTA 폐기까지 압박하면 한국을 중국 쪽으로 밀어낼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했다.

졸릭 전 총재는 "트럼프의 충동적인 정책은 전략적으로 앞뒤가 맞지 않는다"면서 "중국이 한국 기업들을 쥐어짜고 있는데 트럼프가 한미 무역을 줄인다면 한국으로서는 최대 무역 파트너(중국)와의 관계를 지키기 위해 베이징에 협조하는 것이 논리적인 코스가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트럼프 행정부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철회를 함께 언급하면서 "한미 FTA에 대한 대통령의 공격은 경제적 동반자로서 미국을 믿을 수 없다는 신호를 줄 것"이라며 "아시아 국가들은 필연적으로 미국의 경제적 후퇴가 태평양 일대에 대한 안보 약속과 일치하는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북한의 위협으로 어느 때보다 한국과의 밀접한 협력관계가 중요해진 시점에 왜 트럼프 대통령이 무역 갈등을 촉발했는지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꼬집었다.

그는 한국이 경제와 민주주의 발전이라는 측면에서 "믿을 수 없는 성공 스토리"를 썼으며 FTA와 무관하게 미국의 6번째 상품 무역 파트너라는 점을 상기시킨 뒤 '존중'과 '신뢰'가 중요한 가치로 받아들여지는 아시아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한 언행은 오랫동안 기억될 수밖에 없다고 염려했다.

또한, 트럼프 대통령의 잇따른 무역협정 뒤집기 명분인 미국의 무역적자에 대해선 "상대적인 성장률, 제조업 우위의 격차, 공급망, 투자, 환율 등을 복합적으로 봐야 하는 문제"라면서 "미국은 새 협정으로 무역적자를 반전시킬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졸릭 전 총재는 "트럼프의 진짜 목표는 무역 보호주의와 이민에 대한 반감, 멕시코 장벽 건설과 같은 국내 정치의 문제를 재구성하려는 것"이라며 "북한, 아프가니스탄, 중동에서 해법을 찾지 못하고 의회와 (특검) 수사에 대한 실망감이 커지면서 그가 마구 비난하고 있다는 데 위험이 있다"고 비난했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은 다른 사람을 비난하기 위해 '나쁜 협상'이라고 규정한 것들을 없애기를 바라고, 자신의 거짓 주장을 합리화하기 위해 기존 협정을 파괴하려는 것이라는 진단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폭주를 막기 위해서는 미 의회가 나서야 한다고 졸릭 전 총재는 거듭 제안했다.

그는 "이런 무역 정책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중요한 동맹 관계를 흐트러뜨리고 안보위기에 직면한 동맹을 상처입히는 일"이라면서 "의회가 대통령의 파괴 행위를 멈추도록 무역에 관한 헌법적 권한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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