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테랑의 품격 살린 염기훈…누가 그를 늙었다고 했나
2년 만에 태극마크 달고 위기에 빠진 대표팀 구원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뛰었다"
(타슈켄트=연합뉴스) 김경윤 기자 = 축구대표팀 베테랑 염기훈(34·수원)은 2015년 6월 16일 러시아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 미얀마와 경기 이후 태극마크를 달지 못했다.
나이가 많아 전성기가 지났고, 대체할 수 있는 선수가 많다는 이유로 오랜 기간 대표팀에 합류하지 못했다.
그렇게 염기훈의 축구인생은 막을 내리는 듯했다.
염기훈은 축구대표팀이 신태용 감독 체제로 변한 뒤 다시 부름을 받았다.
그는 K리그를 대표하는 측면 공격수 자격으로 조기소집 훈련에 참가해 어린 선수들과 호흡을 맞췄다.
기대는 크지 않았다. 2선 라인엔 손흥민(토트넘), 권창훈(디종), 이재성(전북) 등 젊고 빠른 선수들이 즐비했다.
예상대로였다. 염기훈은 지난달 31일 이란과 경기에서 벤치만 달궜다. 자존심이 상할 법했다.
그러나 염기훈은 우즈베키스탄과 최종전을 앞두고 "조기소집 훈련을 한 선수들이 무조건 경기에 뛰어야 한다는 생각은 안 했다"면서 "섭섭한 건 없다. 다만 그 어느 때보다 준비를 많이 한 만큼 출전기회가 오면 내 장기를 살려 세트피스에서 좋은 모습을 펼치고 싶다"고 말했다.
염기훈은 6일(한국시간)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분요드코르 스타디움에서 열린 우즈베키스탄전에서 예상대로 선발 명단에서 제외됐다.
기회는 지루한 0-0 공방전이 계속되던 후반 19분에 찾아왔다.
염기훈은 지친 권창훈을 대신해 그라운드를 밟은 뒤 전성기 못지않은 플레이로 대표팀의 막혔던 혈관을 뚫었다.
그는 왼쪽 측면을 집요하게 공략하며 날카로운 스루패스와 크로스를 날렸고, 결정적인 슈팅 기회를 생산하며 대표팀의 기세를 올렸다.
대표팀은 염기훈 투입을 기점으로 경기 흐름을 가져온 뒤 우즈베키스탄 수비를 흔들며 일방적인 경기를 펼쳤다.
대표팀은 0-0 무승부를 기록해 조 2위로 러시아월드컵 본선진출에 성공했다.
염기훈은 비록 공격 포인트를 기록하진 못했지만, 베테랑의 품격과 K리거의 자존심을 살렸다.
경기 후 염기훈은 "그동안 뛰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있었다"라며 "마지막 A매치라는 각오로 뛰었는데, 좋은 결과로 이어져 기쁘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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