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6차핵실험] 文대통령 평화노선 '직격'…당분간 대화동력 실종
새 정부 출범 후 첫 北 핵도발로 안보적 시련 맞아…외교안보 능력 시험대에
"北과 대화하기 어려운 상황"…'긴 호흡' 강조하며 중장기적 대화기조는 유지
文대통령 "최고 강한 응징"…항모 등 역대급 美전략자산 한반도 집결할 듯
(서울=연합뉴스) 이상헌 기자 = 북한이 3일 전격적으로 제6차 핵실험을 단행하면서 문재인 대통령이 추구해온 '평화노선'이 직격탄을 맞은 형국이다.
북한의 잇따른 도발에도 대화의 끈을 놓지 않으려고 애써온 문 대통령으로서는 현 단계에서 한반도 평화구상을 추진할 동력 자체를 잃은 셈이기 때문이다. 한반도 정세의 무게추가 북한을 향해 최대한의 군사·외교적 압박을 가하는 쪽으로 기울면서 앞으로 상당 기간 대화 자체를 거론하기 어려운 분위기가 조성될 것이라는 게 지배적인 관측이다.
새 정부 출범 이후 북한의 핵실험 도발을 처음으로 겪은 문 대통령이 취임 넉 달 만에 외교안보적으로 최대의 시련에 봉착한 셈이다.
문 대통령은 취임 이후 대화의 끈을 단 한 순간도 손에서 놓지 않았기에 이번 핵실험으로 인해 당혹감이 매우 컸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문 대통령은 북한의 6차 핵실험을 '넘지 말아야 할 선(線)'으로 규정하면서 김정은 정권에 사전 경고를 해왔다. 지난 4월7일에는 평택 공군작전사령부(공작사)를 방문해 "북한이 계속해서 미사일 도발을 하고 끝내 6차 핵실험을 강행한다면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는 것이 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문 대통령이 이날 국가안보회의(NSC) 회의를 주재하는 자리에서 "참으로 실망스럽고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며 "국제사회로부터 고립을 더욱 가중하는 실로 어처구니없는 전략적 실수를 자행했다"고 발언한 것은 이같은 배경이 깔린 것으로 볼 수 있다. 자신의 평화적 해결 노력이 북한에 의해 외면받고 있는데 대한 강도높은 유감의 뜻이 담겼다는 평가다.
실제로 문 대통령은 북한의 잇따른 도발 속에서도 대화 기조를 꾸준히 이어왔다. 을지프리덤가디언(UFG) 기간인 지난달 21일 을지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주재하면서 "을지훈련은 방어 성격의 연례훈련으로 한반도에서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려는 의도가 전혀 없다"며 "대화의 문은 항상 열려 있다"고 강조했다.
이틀 뒤 통일부 업무보고에서는 "엄동설한에도 봄은 온다"며 '씨앗'을 뿌릴 준비를 착실히 할 것을 통일부에 당부했다. 통일부는 이날 문 대통령에게 대화채널 복원과 교류 활성화를 통한 남북관계 재정립 추진 방안을 보고했다.
문 대통령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의 최근 통화에서도 최대한의 대북 압박으로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나오게 해야 한다는 데 뜻을 같이했다. 비록 압박·제재를 가할 국면이지만 궁극적으로는 대화를 통해 북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문 대통령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였다.
그러나 북한이 이날 6차 핵실험을 공개 천명하고 "대륙간탄도로켓 장착용 수소탄 시험에서 완전 성공했다"고 밝히면서 문 대통령이 규정한 '레드라인'(금지선)을 넘어선 것으로 해석된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17일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북한이 ICBM을 완성하고 거기에 핵탄두를 탑재해 무기화하는 것"을 '레드라인'(금지선)으로 첫 규정했다. 그러면서 북한이 이를 넘어서면 "우리(한미 양국)가 어떻게 대응할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평화적·외교적 노선에 어떤 변경이 가해질지 예단할 수 없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기자들과 만나 "문 대통령이 언급한 레드라인이 핵·ICBM의 결합인데, 북한이 '완성 단계의 진입을 위해' 핵실험을 했다고 표현한 것을 보면 여전히 가야 할 길은 남았다고 본다"고 말했다. 현시점에서 레드라인을 넘어섰다고 단언하기 어렵다는 취지다.
다만 문 대통령은 대선 때인 4월 27일 방송기자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북한이 6차 핵실험을 감행하면 남북 간 상당 기간 대화는 불가능해지며, 우리가 5년 단임 정부임을 생각하면 다음 정부에서도 남북관계 개선이 사실상 어렵다"고 말했었다.
따라서 이날 북한의 핵실험은 문 대통령의 대북 해법에 미세 변경을 가져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그렇다고 '군사적 옵션'의 실행을 거론하는 것은 섣부르다는 지적이다.
문 대통령은 북한과 미국 간 극단적 대립 속에 미국발(發) 군사행동 가능성이 제기될 때마다 '전쟁 절대 불가' 방침을 천명해왔다.
문 대통령은 북한의 연이은 ICBM급 도발로 미국에서 '군사행동론'이 흘러나왔던 지난달 8·15 경축사에서 "한반도에서 또다시 전쟁은 안 된다"며 "누구도 대한민국 동의 없이 한반도에서의 군사행동을 결정할 수 없다"고 분명히 했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이날 문 대통령 주재 NSC 전체회의 결과 브리핑에서 "북한의 핵·미사일 계획을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비가역적인 방법으로 포기하도록 북한을 완전히 고립시키기 위한 유엔 안보리 제재 결의 추진 등 '모든 외교적 방법'을 강구해 나가기로 했다"고 말했다.
또다른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대북정책에 대해 긴 호흡으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북한의 핵실험에도 여전히 외교적·평화적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큰 틀의 전략기조는 수정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문제는 문 대통령 입장에서 단기적으로 대북 해법의 선택지가 좁아진 점이다. 문 대통령은 이날 NSC에서 "국제사회와 함께 최고의 강한 응징방안을 강구하라"고 지시했고, 미국의 가장 강력한 전략자산 전개 방안을 미측과 협의하기로 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초 북한의 ICBM 도발 직후 한미연합 탄도미사일 훈련을 지시했고, 지난달 IRBM 도발에는 "강력한 대북응징 능력을 과시하라"며 전투기 폭탄투하 훈련과 함께 현무2 탄도미사일 발사 영상을 공개했다.
'죽음의 백조'라 불리는 B-1B 전략폭격기와 스텔스 전투기를 비롯한 미국 전략자산의 한반도 출격도 잇따르는 등 대응 수위를 높여왔다.
청와대 관계자는 "전략적 목표와 전술 단계에서의 대응은 분명히 다르다"며 "아무래도 대화하기는 굉장히 어려운 상황이지만 도발 강도에 따라 우리의 압박·제재 국면도 강도가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항공모함을 비롯해 지금껏 보지 못한 최대 규모의 미 전략자산이 한반도 주변에 배치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전망된다.
아울러 전술핵 재배치를 둘러싼 논란도 증폭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송영무 국방부 장관은 최근 방미에서 한반도 전술핵 재배치에 대해 논의하지 않았다고 부인했지만, 북한이 수소폭탄 실험까지 한 상황에서 이에 맞불을 놓을 전술핵 재배치 주장이 어느 때보다 커질 가능성이 없지 않다.
미국을 중심으로 대북 선제타격론이 고개를 들 가능성도 제기되며, 이 경우 문 대통령의 대화 기조 입지가 큰 도전에 직면하면서 외교력이 또다시 시험대에 오를 것으로 관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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