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알 수 없음'에 대하여…이승우 열 번째 소설집
신간 '모르는 사람들'
(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 아버지는 11년 전 4월 어느 날 흔적 없이 사라졌다. 러시아 국적 보잉 747기가 유럽의 한 도시에 추락한 날이었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그 항공기에 타고 있었을 거라고 믿는다. 탑승자 명단에서 여배우의 이름을 보고 나서다.
이승우(58)의 열 번째 소설집 '모르는 사람들'(문학동네)에 나오는 인물들은 대체로 무지하다. 타인과 자기 자신, 세계에 대한 믿음이 강할수록 오히려 근거가 부족한 억측이거나 논리적 비약의 결과인 경우가 많다. 표제작 '모르는 사람들'에서 화자의 어머니는 여배우가 아버지 회사의 광고모델이었다는 이유로, 불륜을 맺던 두 사람이 비밀여행을 떠났다가 사고를 당했다고 믿는다. 아버지가 탑승자 명단에 없었다는 사실은 그 믿음이 그르다는 강력한 반증이었다.
어머니는 실종되기 전에도 수십 년 같이 산 아버지를 제대로 몰랐다. 11년 뒤 아프리카 레소토에서 도착한 부고를 듣고 아버지가 어떤 인물이었는지 겨우 이해하게 된다. 아버지는 그곳에서 선교사로 활동하다가 말라리아로 죽었다. 부고를 알린 선교회에서는 아버지가 꽤 오래 준비하고 레소토로 떠났다고 했다. "어머니에게 아버지는 가장 멀리 있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가장 멀리 있는 사람은 가장 모르는 사람이다."
알고 있던 것과 다른 아버지의 실제를 마주하게 되는 이야기는 계속 이어진다. '강의'의 화자는 죽은 아버지가 돈을 빌리러 찾아다녔던 '금융 백화점'에 가서 아버지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듣는다. "아버지 혼자 죽을힘을 다하고 있었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나로 하여금 죽을힘을 다하지 않아도 되도록 죽을힘을 다하고 있었다는 걸 몰랐다. 아버지가 모르게 했기 때문에 몰랐다."
'복숭아 향기'의 화자는 자신이 태어났다는 M시에 근무하게 되고 나서야 30여 년 전 아버지와 어머니가 결혼하고, 자신이 유복자로 태어나게 된 사연을 파악하게 된다. 그 전에는 M시에 가본 적이 없었고, 심지어 자신이 그 도시에서 태어났다는 말을 정말로 들었는지도 명확하지 않았다.
작가 자신이 어느 정도 투영된 듯한 화자들은 자신의 무지와 기억의 불완전성, 자아의 불완전함을 뒤늦게나마 인식한다. 회의는 결벽증에 가까운 반추와 자기 반성을 거쳐 종종 초월적 사유에 이른다. '신의 말을 듣다'에서 대학교수이자 시민단체 부대표인 김승종이 그렇다. 비리 시장에게 항의 방문을 갔다가 "당신들이 뭐 그렇게 정의로운데?" 한마디에 쓰러지고 만다. 내면에서 반복해 울리던 그 말을 김승종은 신의 말로 받아들인다.
'넘어가지 않습니다'에선 회의 끝에 두려움이 사그라든다. 폭력을 일삼는 동거남으로부터 도망쳐 숨어든 시골 전원주택 주변을 외국인 노동자가 배회한다. 남자는 고국에 있는 가족과 스마트폰으로 연락하기 위해 와이파이를 찾아 여자의 집 근처를 서성댄 거였다. 경찰에 신고하고 그의 사정을 알게 됐지만, 여자는 자기 내면의 불안을 이기지 못한다. 비바람이 휘몰아치던 날, 여자는 비를 맞으며 떨고 있는 남자를 집 안으로 들인다.
"그녀가 하려고 한 말은, 당신들이 아니라 당신들을 두려워하도록 만드는 무엇인가가 두렵다는 것이었다." 단편들은 안다고 생각하는 것들 속에 무지가 뒤섞인 개인의 내면을 그리면서, 완전한 믿음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세계도 겨냥한다. 2014년 봄부터 3년간 발표한 작품들이다. 작가는 책 뒷머리에 이렇게 썼다.
"각각의 소설들에 그 소설을 쓸 때의 시대의 간섭이 선명하다. 어떤 소설은 그 간섭에 대한 토로이다. 세상이 요동칠 때 흔들리지 않는 마음은 없다. 가장 자율적인 것도 자율적이지 않다." 248쪽. 1만3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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