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한미FTA 폐기' 카드 꺼내나…北도발속 통상마찰음 고조
김현종-라이트하이저 개정 협상 결렬 후 '폐기 준비' 지시…동맹 심각균열 우려
트럼프, 내주에 폐기여부 참모들과 논의하기로…'협상용' 가능성도
(워싱턴=연합뉴스) 강영두 특파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정부가 이르면 내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폐기하는 절차에 돌입할 것이라는 미 언론 보도가 나와 파장이 일고 있다.
미국의 요구에 따라 지난달 한 차례 열린 한미FTA 공동위원회 특별회의가 양국의 견해차만 확인한 채 결렬된 지 불과 열흘여만이다.
이는 미국이 앞으로 한미FTA 개정을 위해 더이상 추가 협상을 하지 않고, 곧바로 폐기 절차에 들어가겠다는 것이어서 양국간 심각한 통상 마찰을 초래할 것으로 보인다.
미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2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FTA 폐기를 위해 준비하도록 참모들에게 지시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폐기 절차는 이르면 다음 주 시작될 수 있다고 전했다.
통상 전문지 '인사이드 유에스 트레이즈'(Inside U.S. Trade's)는 트럼프 정부가 오는 5일 폐기 절차를 개시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허리케인 '하비' 수해 현장인 텍사스주(州) 휴스턴을 방문 중인 트럼프 대통령은 기자들에게 "다음주에 폐기 여부에 대해 참모들과 논의를 하겠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한미FTA 폐기 준비 지시 및 폐기 여부 논의 방침은 지난달 22일 서울에서 열린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무역대표부(USTR) 대표와 우리측 김현종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의 특별회의가 결렬된 후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회동에서 미국은 한미FTA 이후 미국의 상품수지 적자 확대와 자동차·철강·정보통신(IT) 분야의 무역 불균형 심화 등을 들어 협정 개정 필요성을 주장했으나, 우리측은 미국의 상품 수지 적자는 한미FTA가 원인이 아닌 만큼 우선 한미FTA 효과와 미국 무역수지 적자 요인에 대한 조사 분석을 하자고 맞섰다.
즉, 미국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급한 성격인 트럼프 대통령이 FTA 재협상과 개정을 할 게 아니라 아예 폐기하자는 반응을 내놓은 것이다.
'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우는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 후보 시절 한미FTA를 "미국의 일자리를 죽이는 협정", "재앙"(disaster)이라고 부르며 줄기차게 재협상을 주장했다.
만약 앞으로 미 정부가 한미FTA 폐기 절차에 돌입한다면 한국 측에 종료 의사를 서면으로 통보해야 한다.
협정문(제24조)에 따르면 한미FTA는 어느 한쪽의 협정 종료 서면 통보로부터 180일 후에 종료된다.
만약 한국 정부가 아무런 문제를 제기하지 않으면 자동 폐기된다. 우리 측은 서면 통보일로부터 30일 이내에 협의를 요청할 수 있으며, 이 경우 양국은 요청일로부터 30일 이내에 협의를 진행해야 한다.
그러나 한미 FTA 개정과 관련해 양국 통상 수장간 특별회의가 불과 한 차례밖에 열리지 않은 상황에서 미 정부가 섣불리 폐기 절차에 돌입할지는 불투명해 보인다.
특히 한미FTA 폐기는 북한의 핵·미사일 위기가 최고조로 치닫는 상황에서 한미동맹의 심각한 균열을 초래한다는 게 미 정부 고위 인사뿐 아니라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목소리다.
실제로 WP는 허버트 맥매스터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과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 게리 콘 국가경제위원회 위원장 등 백악관과 정부의 안보·경제 고위 라인이 트럼프 대통령의 협정 폐기 움직임을 막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에 따라 트럼프 대통령의 '협정 폐기 지시'는 향후 한미FTA 개정 및 재협상 과정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려는 협상용일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거래의 기술'이라는 저서를 출간했을 만큼 뛰어난 협상가라고 자부한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의 한미FTA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이 재확인된 만큼 우리 정부는 미국 측 동향을 면밀히 주시하고 있다.
워싱턴의 통상 관계자는 "아직 미국 측으로부터 공식 서면 통보가 온 것은 아니다"면서 "미국의 의도를 파악하면서 향후 대응책을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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