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휴스턴 숨통은 트였지만…물가 치솟고 곳곳 공사장
'대형 저수지 방류' 일부 지역 여전히 침수…해소엔 상당시일 소요
갈길 먼 정상화…"새로운 허리케인 또 닥치나"
(휴스턴=연합뉴스) 이준서 특파원 = 꼭 일주일 전 초강력 허리케인 '하비'의 상륙으로 유례없는 물폭탄을 맞았던 휴스턴. 1일(현지시간) 도심의 숨통은 다소나마 트인 듯했다.
외곽순환도로에서는 차량이 속도를 높였고, 도시를 동서와 남북으로 각각 가로지르는 10번(I-10)과 45번(I-45) 인터스테이트 하이웨이의 통제는 해제됐다.
도심을 감싸는 '버펄로 바이유'(Bayou)에도 접근이 가능해졌다. 바이유는 일종의 인공수로를 파놓은 휴스턴 특유의 홍수 대비용 지천이다. 여러 개의 바이유를 만들어놓은 덕분에 도심의 수위는 그나마 빨리 낮아졌을 것이다.
버펄로 바이유 산책로에는 시민들도 여럿 보였다. 자전거를 타고 나온 주민 알렉산드리아는 "며칠 전만 해도 바이유 주변 도로가 모두 잠겼다"고 전했다.
시시각각 현지방송에 나와 상황을 전하고 있는 실베스터 터너 휴스턴 시장은 "휴스턴의 비즈니스가 다시 시작됐다"고 다소 자신감을 보였다.
그렇지만 도시의 속살을 들여다보면 허리케인의 충격은 아직 진행형이었다.
물이 빠진 곳에는 포크레인이 자리를 잡았다. 현지 통신사인 AT&T나 버라이즌 마크를 단 트럭들이 바쁘게 오가고, 도로 곳곳에서 수도·전기·가스 유틸리티공사가 이뤄졌다.
허리케인 '하비'는 미국의 4대 도시 휴스턴을 거대한 공사장을 바꿔놨다. 주요 간선도로는 뚫렸지만, 골목골목 도로에는 적잖은 물이 차올라있어 차량 통행을 막았다. 집으로 되돌아갔다가 무너진 지붕과 엄청난 잔해에 허탈해하는 시민들의 표정이 연달아 방송에 나왔다.
도로의 '실핏줄'이 원활하지 않다 보니 큰 도로마다 차량이 쏟아져나와 엄청난 정체가 빚어졌다. 급한 대로 1~2대씩 차량을 구하려는 시민들로 렌터카 업체에는 북적였고, 숙박업소는 대피객들로 가득 찼다.
조지 부시 국제공항도 영업을 정상화했지만 '휴스턴 탈출' 비행깃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미국 원유생산의 '메카'인 텍사스의 기름값도 뛰었다. 보통 갤런당 2달러대인데, 10달러짜리 주유소도 등장했다고 했다.
휴스턴 당국은 "바가지요금을 철저히 단속하겠다"고 경고했다.
그나마 물이 빠진 지역은 복구 작업이라도 진행할 수 있으니 사정이 나은 편이다.
멕시코만과 인접한 남쪽 지역, 대형 저수지의 방류로 예상 밖 타격을 받은 서쪽 지역은 침수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케이티(Katy), 메모리얼(Memorial) 지역도 서쪽에 있다.
차량을 메모리얼 지역으로 돌렸다.
침수된 차량과 1층까지 잠긴 집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자, 경찰이 차량을 막아섰다.
저수지 방류로 물이 빠지기는커녕 조금씩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고 했다. 외환위기 직후에 이민 왔다는 최영기 씨는 경상도 억양으로 "슬며시 차오르는데 사람 미치고 환장하는 거라…"고 말했다.
비가 그치고 햇볕이 내리쬔 지 벌써 사흘째가 됐지만, 평지인 휴스턴 곳곳에 차있는 물은 좀처럼 빠지지 않았다. 뜨거운 태양열에 증발하기만을 기다리는 듯했다.
CNN방송에는 완전히 물에 잠긴 버몬트(Beaumont)의 긴급구조 장면이 끊임없이 보도됐다. 이곳에서 동쪽으로 100마일(160km) 이상 떨어진 텍사스-루이지애나 주(州) 접경지역이다.
휴스턴을 휩쓸었던 허리케인은 버몬트를 기점으로 북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조금만 더 동쪽으로 갔으면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스다. 12년 전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1천800명이 숨졌던 뉴올리언스로선 가슴을 쓸어내렸을 법하다.
이곳의 허리케인 시즌은 8월 중순부터 시작된다.
시작부터 벌써 기진맥진해진 상태에서 서서히 몸을 추스르고 있는 휴스턴 시민들은 대서양에서 형성된 또다른 허리케인 '일마(Irma)'의 예상 이동경로를 불안한 눈길로 바라보는 듯했다.
j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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