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연임가도 탄력받는 메르켈…경쟁자 슐츠, 내부 적까지 설상가상
사민당 후보 슐츠, 같은당 가브리엘 외무장관 구설·견제로 곤혹
이슈없는 총선 속 제2당 우왕좌왕에 극우정당 어부지리 관측도
(베를린=연합뉴스) 이광빈 특파원 = 독일 집권 기독민주-기독사회당 연합을 이끄는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4연임 가도가 경쟁당의 내홍으로 더욱 탄력을 받고 있다.
사회민주당 총리 후보인 마르틴 슐츠 당수가 가뜩이나 반전의 기회를 잡지 못하는 상황에서 사민당의 주요 인사들마저 잇따라 구설에 오르며 추격전에 찬물을 끼얹고 있기 때문이다.
전(前) 사민당 당수인 지그마어 가브리엘 외무장관은 최근 사민당의 선거 패배를 예감한 발언을 해 물의를 빚었다.
가브리엘 장관은 주간 슈피겔 인터뷰에서 차기 대연정에 대해 "슐츠가 이미 대연정의 가능성을 닫아둔 데다 슐츠가 총리가 되지 않을 것이어서 현실적으로 좋은 생각이 아니다"고 말했다.
이는 사민당이 제1당이 되기 어렵다고 시인한 것으로 해석되면서 사민당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사민당 지도부는 31일 성명을 내고 이런 해석을 반박했다.
성명에선 "가브리엘 장관은 현재의 여론조사 결과 때문에 슐츠 당수가 정부를 이끌 기회를 더 이상 갖지 못할 것이라고 말하지
않았다"며 "가브리엘 장관은 슐츠 당수가 메르켈을 대체할 총리가 될 것으로 믿는다고 재확인했다"고 강조했다.
사민당 지도부의 반박에도 논란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는 분위기다.
더구나 '싱거운' 총선 정국에서 관심의 초점이 사민당 내부 분열에 쏠리면서 사민당을 더욱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앞서 사민당 소속인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총리가 러시아 국영석유기업 '로스네프티'의 감독이사회 의장직을 맡기로 한 데 대해 비판여론이 비등해 엎친 데 덮친 격이 된 셈이다.
특히 가브리엘 장관이 총선 정국에서 주인공이 돼야 할 슐츠 당수를 뒷전으로 미루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돼온 것과 맞물려 사민당의 분열상이 심화하고 있다.
가브리엘 장관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터키를 상대로 강경 발언을 쏟아내 여론의 주목을 받았다.
그는 지난달 30일에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주재한 프랑스 정부 내각회의와 프랑스 외무부의 재외공관장 회의 개막식에 참석했다.
가브리엘 장관은 프랑스 내각회의에서 마크롱 대통령의 노동시장 개혁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하기도 했다.
사민당의 집권 가능성이 떨어지는 데다 대연정도 희박하다는 관측 속에서 '말년' 장관이 광폭 행보를 벌인 것이다.
가뜩이나 총선 캠페인에서 메르켈 총리와의 차별화에 애로를 겪는 슐츠 당수 입장에선 달가울 게 없는 행보다.
이에 독일 정치권에서는 '메르켈 대세론'이 굳건한 상황에서 이미 슐츠 당수와 가브리엘 장관이 '포스트 총선' 이후의 당권경쟁에 나선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슐츠 당수가 대연정에 거리를 둔 것도 선거 패배 시 대연정에 참여해 장관직을 얻기보다 야당 지도자로 자리매김하겠다는 의도가 깔렸다는 관측이다.
사민당은 선거 패배 시 대연정 참여 가능성에 대해 언급을 피하고 있지만, 선거 후 의석 점유율과 사민당 내 역학 구도에 따라 대연정 가능성도 열려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일부 독일 언론은 사민당 내부의 지리멸렬한 상황이 기민·기사당 연합과 사민당 간의 대결 구도를 약화시켜 여론조사에서 3위를 달리는 극우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반사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했다.
'내우외환'에 시달리는 슐츠 당수는 오는 3일 메르켈 총리와의 처음이자 마지막 TV토론에서 승부수를 띄울 것으로 보인다.
최근 전문기관의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기민ㆍ기사당 연합은 37∼40%의 지지율로, 사민당(22∼24%)을 압도하고 있다.
lkbi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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