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구잡이 지방산단] ① '일단 만들고 보자'…애물단지 전락

입력 2017-09-02 09:15
수정 2017-09-02 09:18
[마구잡이 지방산단] ① '일단 만들고 보자'…애물단지 전락

경기 침체에 철저한 검토 없이 주먹구구식 추진한 탓

미분양 지자체 재정압박 요인…은행 빚에 파산 우려

(전국종합=연합뉴스) 정부가 아닌 일선 자치단체들이 조성해 관리하는 산업단지는 작년 말 기준으로 615개나 된다.

2011년 470개에서 5년 만에 무려 145개나 증가했다.



새로운 산단이 기하급수적으로 만들어지면서 미분양 면적도 같은 기간 848만㎡에서 2천139만㎡로 152% 이상 증가했다.

경기 침체로 기업의 수요는 제자리걸음인데 공급이 급증하면서 발생하는 필연적 결과다.

◇ 수도권에서 먼 낙후지역일수록 미분양 쌓여

미분양 문제는 수도권에서 멀리 떨어진 곳, 산업 발전이 더딘 낙후지역일수록 심각하다.

지난 6월 말 현재 전국 시·도별 산업단지 미분양률(국가산업단지 포함)을 보면 강원이 11.3%로 가장 높고 충남 11.0%, 전북 8.2%, 전남 7.7% 등의 순이다. 이들 지역의 미분양률은 전국 평균 4.3%보다 많게는 3배 가까이나 높다.

반면에 서울에서 가까운 경기(1.9%), 인천(3.5%), 충북(3.7%)이나 산업이 발달한 대도시인 대전(0.3%), 울산(0.4%), 부산(2.3%) 등은 미분양률이 크게 낮다. 분양가가 높은 데도 땅이 없어 못 팔 정도다.

미분양률이 높은 산단의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문제는 더 심각하다.

충남 계룡시가 450억원을 들여 두마면 입암리에 만든 제1 농공단지는 분양률이 3%에 불과하다.

19만3천730㎡ 규모, 36필지 가운데 2개 필지만이 주인을 찾았다.

3개 업체와 투자유치 협약을 맺었지만, 구속력이 없어 실제 입주까지 이어질지는 알 수 없다.



◇ 각종 세제 혜택에 포상금까지 내걸고 기업 유치 사활

전남 강진군이 46만㎡ 규모로 조성한 강진산단 역시 산업용지 분양률이 12.9%에 그친다.

2014년부터 분양 공고를 냈지만 입주한 업체는 9개뿐이다.

전남지역에서 분양률이 50%에도 미치지 못하는 산단은 강진산단을 포함해 7개나 된다.

충북 옥천군의 옥천 의료기기 농공단지와 청산산업단지는 8년 넘게 장기 미분양된 부지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의료기기 농공단지 1만3천㎡, 청산산업단지 5만2천㎡가 아직 주인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이들 공단은 2013년 국토교통부의 '신발전 투자촉진지구'로 지정돼 100억원 투자기업에 법인세, 소득세, 취득세 등을 면제 또는 감면해주는 데도 선뜻 입주하려는 업체가 없다.

옥천군은 투자기업의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분양대금을 연리 2.5%, 5년 거치 10년 분할 상환하도록 해주고 있다.

또 기업 유치에 기여한 시민에게는 최고 500만원의 포상금을 내거는 등 안간힘을 쏟고 있으나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도 옥천군은 2019년까지 의료기기 농공단지 인근에 35만1천661㎡ 규모의 제2 의료기기 산업단지를 추가로 조성할 계획이다.



◇ 싼 분양가만 믿고 마구잡이로 조성한 탓

막대한 예산을 들여 조성한 산단이 이처럼 애물단지로 전락한 것은 철저한 타당성 분석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사업을 추진한 탓이 크다.

값싼 분양가만 믿고 도시권과의 거리, 열악한 정주 여건 등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미분양률이 무려 93.8%나 되는 경남 거창의 승강기 전문농공단지가 대표적인 예다.

승강기 관련 업종만 입주하도록 제한했는데, 전국적으로 관련 업체가 몇 되지 않아 근본적으로 분양이 쉽지 않다.

기존 업체 대부분이 수도권에 몰려있는 데다 이전하려면 기존 공장을 매각해야 하는 등 각종 어려움이 있다는 점도 고려하지 못했다.

전남 강진산업단지는 입주 기업들 입장에서 막대한 물류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남도의 끝이라는 지리적 한계를 감안하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는다.

정부가 내년부터 지방자치단체의 일반 산업단지 조성에 대해 사전타당성 검증을 하기로 한 것도 이런 지적에 따른 것이다.

지자체가 구체적인 계획이나 입지 분석도 없이 산단을 지정함으로써 난개발이 진행되는 것을 막겠다는 취지다.



◇ 장기화하는 경기 침체가 기름 끼얹어

장기화하는 경기 침체도 주요 원인이다.

분양률이 43%에 불과한 충북 영동군의 영동산업단지는 교통 여건도 좋고 가격도 ㎡당 9만3천680원으로 저렴한데도 투자업체가 나타나지 않아 애를 태운다.

기업 유치를 통한 일자리 창출과 막대한 세수 수입이라는 '장밋빛 청사진'에만 매몰돼 경기 흐름을 면밀히 검토하지 못한 것이다.

영동군은 "경기 침체 외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며 "경기 침체가 직격탄이 됐다"고 말했다.

자치단체의 선심성 행정도 한몫한다.

한 자치단체 관계자는 "대기업을 유치하면 연간 수백억원의 지방세 수입을 올릴 수 있고, 단체장 입장에서는 실적 쌓기 용으로 활용할 수도 있어 무리해서라도 조성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실토했다.

◇ 포천시는 갚아야 할 은행 빚만 1천310억원

무리한 산단 조성은 재정 압박으로 이어져 주민의 삶의 질을 떨어뜨린다.

경기도 포천시는 지난해 준공한 용정일반산업단지가 제대로 분양되지 않으면서 은행에 갚아야 할 빚이 1천310억원이나 된다.

1천820억원의 사업비 대부분을 은행 빚으로 충당했는데 분양을 통해 회수한 돈은 510억원밖에 안 된다.

2020년 4월까지 분양하지 못하면 시가 모든 책임을 떠안기로 해 시민 부담은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으로 우려된다.

강원도 춘천시가 만든 동춘천산업단지도 분양률이 48.7%에 머물면서 400억원에 가까운 대출원금과 이자를 떠안아야 할 처지다.

한 자치단체 관계자는 "산업단지 조성에는 규모에 따라 수백억원에서 1천억원대의 막대한 예산이 투입된다"며 "주먹구구식으로 만들어 분양이 안 되면 그 짐을 고스란히 주민이 질 수밖에 없는데 심지어 지자체 파산도 우려된다"고 경고했다.

(백도인 양영석 우영식 손상원 박병기 황봉규 이상학 지성호 기자)

doin100@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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