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불모지 된 백악관…트럼프-문화계 반목 갈수록 심화
(서울=연합뉴스) 유영준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미국 문화계의 반목이 갈수록 심화하면서 백악관이 전통적으로 해온 문화진흥 역할 대신 문화에 대한 모욕과 무시의 장소로 변하고 있다고 영국 시사주간 이코노미스트가 29일자에서 혹평했다.
전통적으로 백악관은 문화에 관한 한 정치와 정파를 초월해 미국 사회에서 문화가 차지하는 불가결한 역할을 전폭적으로 지지하는 중심이 돼왔으나 트럼프 행정부 들어 이러한 전통이 완전히 단절됐다는 것이다.
미국을 뒤흔들고 있는 정치적인 논란에 이어 문화에 대한 그의 무지와 편견이 백악관을 문화의 불모지로 만들고 있다는 비판이다.
예전 같았으면 대통령은 수시로 주요 문화계 인사들을 백악관으로 초청해 이들을 격려하는 게 주요 일정의 하나였으나 지금은 백악관을 찾는 문화계 인사들도 없을뿐더러 오히려 대통령과 문화계 인사들 간에 비난전이 가열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미 지난 1월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에 주요 문화계 인사들이 참석을 거부하면서 양자 간의 소원한 관계는 예견된 일이었으나 이러한 불화가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
전임 버락 오바마 대통령 당시와는 너무나 대조적인 상황이다.
최근 버지니아 샬러츠빌 사태를 둘러싼 트럼프 대통령의 반응은 양자 간의 불화를 더욱 증폭시켰다.
백악관 예술ㆍ인도주의 자문위원회의 16명 위원은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을 좌시할 수 없다며 일괄 사임했다. 이 위원회는 1982년 문화정책 자문을 위해 당시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에 의해 설립된 공식기구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해체한 일자리와 경제전략 자문위원회들과 달리 백악관 공식기구로는 처음으로 해산한 것이다.
백악관은 또 케네디센터에서 열리는 연례 예술인 공로상 시상식에 트럼프 대통령 부부가 참석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 문화에 기여한 예술인들의 공로를 치하하는 이 행사에는 전통적으로 대통령 부부가 빠짐없이 참석해 왔다.
이번 행사에서는 팝스타인 라이오넬 리치와 글로리아 에스테반, TV 프로듀서 노먼 리어 등의 평생 공로를 치하할 예정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불참을 선언한 것은 행사에 앞서 백악관에서 열리는 축하리셉션에 예술인들이 불참을 선언한 데 대한 보복적 성격의 것이다.
백악관 리셉션이 취소된 것은 행사 이래 처음 있는 일이었다.
또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하기 전인 지난해 11월에는 브로드웨이 뮤지컬 '해밀턴'을 둘러싸고 문화계와 날 선 공방을 벌이기도 했다.
미국 건국의 공로자 가운데 한 사람인 알렉산더 해밀턴의 생애를 힙합 뮤지컬로 표현한 해밀턴은 국내외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으나 트럼프는 트위터를 통해 뮤지컬의 배역을 문제 삼았다.
해밀턴 제작진은 개막 공연에 앞서 2015년 오바마 대통령 초청으로 백악관에서 절찬리에 시연회를 하기도 했다.
문화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홀대는 예산 편성에서도 드러난다.
트럼프 행정부는 국립예술진흥기금(NEA)을 비롯한 각종 문화진흥 예산을 87%나 삭감했다. 박물관, 도서관, 공영방송 부분도 대폭 깎였다.
트럼프 대통령과 문화계 엘리트 간의 불화는 기본적으로 가치관의 충돌에서 비롯된 것이다. 표현의 자유나 체제에 대한 불만, 소외된 목소리를 대변하는 문화계의 가치 추구는 이익을 좇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기업가 출신의 트럼프 대통령과 상극일 수밖에 없다.
과거 민주당의 빌 클린턴 대통령 당시에는 강력한 보수주의 연예인인 배우 찰턴 헤스턴이 백악관 리셉션에 참석했다. 공화당 조지 W 부시 대통령 시절에도 열성 민주당원이었던 가수 바브라 스트라이전드도 기꺼히 부시 대통령의 초청을 받아들였다.
따라서 트럼프 대통령의 백악관과 문화계 엘리트들 간의 불화는 이러한 전통을 급격히 파괴하는 것이며 트럼프 체제의 속성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이코노미스트는 지적했다.
또 자신을 비판하는 문화인들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태도는 오히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크렘린 궁을 닮아가고 있다고 꼬집었다.
러시아 당국은 최근 러시아의 대표적 무대ㆍ영화감독 가운데 한 사람인 키릴 세레브레니코프 감독을 공금 횡령 등의 지목으로 가택 연금에 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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