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 유혹, 소비에서 보이콧까지…소비하는 인간의 역사
설혜심 교수 '소비의 역사' 펴내
(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KBS 2TV 예능 프로그램 '김생민의 영수증'이 장안의 화제다. '짠돌이'로 유명한 방송인 김생민이 의뢰인 영수증을 분석해 현명한 소비에는 '그뤠잇!'(Great)을, 그렇지 않은 소비에는 '스튜핏!'(stupid)을 외치는 모습에 폭소가 절로 터진다.
이 프로그램의 핵심 메시지는 김생민 뒤편에 내걸린 플래카드에 있다. "돈은 안 쓰는 것이다." 큰돈을 벌지는 못했어도 아끼고 아껴 10억 원을 모았다는 김생민의 소비 철학이다. 카메라가 플래카드를 비출 때마다, '시발비용'(홧김에 충동적으로 쓰는 돈을 뜻하는 신조어)과 '탕진잼'(소소하게 쓰는 데서 재미를 느끼는 일)에 몰두했던 기억이 떠올라 뜨끔하더라는 이들도 있다.
소비란 무엇일까. 단순히 물건을 사고 대가를 지불하는 행위일까. 관점에 따라 욕망만을 좇는 물질주의 산물로, 혹은 정반대의 것으로 갈라치기를 해서 평가할 수 있는 것일까. 설혜심 연세대 사학과 교수가 쓴 신간 '소비의 역사'(휴머니스트 펴냄)는 소비하는 인간의 다채로운 행적을 파고든 책이다.
책은 '굿즈'(Goods·욕망하다), '세일즈'(Sales·유혹하다), '컨슈머'(Consumer·소비하다), '마켓'(Market·확장하다), '보이콧'(Boycott·거부하다) 등 소비를 구성하는 5가지 요소에 따라 이야기를 풀어간다.
근대 이후 현대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기본적인 삶을 더 풍성하게 만들어준 발명품, 옷이나 화장품 같은 패션 용품, 책을 비롯한 인쇄 매체, 유럽 상류층의 사치품 등 각종 상품의 역사를 흥미로운 일화들을 곁들여 살핀다.
이러한 사례들을 통해 근대 소비혁명, 소비자의 탄생, 과시적 소비 등 소비를 둘러싼 개념과 논의들을 소개한다.
노예제 폐지의 일환으로 일어난 설탕 거부운동과 흑인들의 불매운동, 미국의 국산품애용 운동 등 소비를 저항이나 연대와 연결지은 부분이 눈에 띈다.
단순히 역사 소개가 아닌, 수집 논쟁, 병적 도벽, 성형 소비, 노년층 소비 등 그동안 크게 관심을 받지 못했던 소비 행위의 맥락도 중간중간 짚고 넘어가는 점에서 생각할 거리가 풍성한 책이다.
496쪽. 2만5천 원.
airan@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